연극 ' 광부화가들'

기자명 김태훈 기자 (kikos13@skkuw.com)

영국의 세계적인 현대미술 거장 헨리 무어가 졸업한 왕립미술학교 출신의 미술강사 라이언. 그는 어느 날 애싱턴 광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미술 감상수업을 부탁받고 강의를 하게 된다. 열심히 준비해간 르네상스 시대의 명화 슬라이드를 자신 있게 펼쳐 보이자 시끄럽던 교실은 일순간 조용해진다. 이 때 침묵을 깨는 한마디, “대체 르네상스가 뭔가요?”

▲ 라이언의 수업에서 르네상스 시대 그림을 처음 감상하는 광부들. 광산일 밖에 모르던 그들에게 그림은 완전히 생소한 것이었다. ⓒ명동예술극장 제공

10살 때부터 광부 일을 하면서 그 흔한 그림조차 단 한 번 본적 없는 광부들에게 처음 마주한 예술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대체 왜 그림을 그리는 건지, 작품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는 광부들에게 라이언은 감상 대신 다양한 주제를 주고 직접 그림을 그려보게 한다. 광부들은 점차 주제를 그림으로 표현하며 동료들과 예술에 대해 토론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광부들이 그렇게 새로운 취미로서 그림을 알아가게 되던 어느 날, 미술 수집가 헬렌 서더랜드가 광부들의 작업실을 찾아오게 된다. 그리곤 광부 지미의 그림에 무려 3파운드라는 거금을 책정하고 사들이려 한다. 이때부터 혼란이 찾아온다. 장난처럼 그린 그림을 주급보다도 많은 돈을 주고 사려 하다니? 지미는 돈을 받는 대신 선물로 그림을 헬렌에게 주고, 헬렌은 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다양한 작품을 보여준다. 눈이 휘둥그레 한 작품 중에 광부들의 눈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작품은 벤 니콜슨의 ‘사각형 속의 원’. 감정가 200파운드에 달하는 이 작품은 정말 사각형의 목재 위에 원 하나를 파놓은 조각이다. 모두가 의아해 하는 가운데 광부 올리버만이 이 작품에서 예술적 의미를 파악해 낸다. 이를 눈여겨 본 헬렌은 이후 올리버에게 전업 화가가 되면 후원을 하겠다는 제의를 한다. 고민에 빠진 올리버는 당대의 가장 유명한 추상화가 중 한 명이자 ‘사각형 속의 원’의 작가인 벤 니콜슨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만난 벤은 헬렌을 ‘공주님’이라 부르며 비위를 맞추고, 자신의 예술작업조차 그녀에게 제한받는 철창 속의 새와 같았다. 올리버는 결국 헬렌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에게 예술이란 자신의 삶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었다. 그의 그림은 자신의 삶이 그대로 화폭으로 넘쳐흐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연극 ‘광부화가들’ 속 광부들에게 예술은 상품이 아닌 삶 그 자체다. 즉, 예술은 돈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림을 통해 광부들은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확인하고, 끊임없이 삶에 대해 고민한다. 결국 자신을 알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을 돈으로 환산하는 사회는 다시 후원자를 지배자로 만들고, 후원받는 광부들을 피지배층으로 전락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사회를 향해 단호하게 말한다. 연극 마지막에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온 광부화가들은 그들의 예술 세계를 상징하는 커다란 배너를 제작한다. 그 위에 쓰인 문구는 ‘art for the people(사람을 위한 예술)’. 자본논리가 지배하지 않는 예술, 삶의 당연한 한 부분으로서의 예술을 하겠다는 작은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