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지하철' 스케치

기자명 이종윤 기자 (burrowkr@skkuw.com)

▲ '책 읽는 지하철'에 참여한 사람들이

지하철 2호선에서 독서 플래시몹을 펼치고 있다.

/ 김은정 기자 ejjang1001@

“덜컹덜컹.” 어두운 터널 속 울려 퍼지는 유일한 소리. 고요함 속에 각자의 스마트폰 액정을 응시한 채 지루함을 달래는 사람들. 우리에게 익숙한 지하철 풍경이다. 그런데 지난 14일, 특별할 것 없던 이곳에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약 1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지하철 2호선 9번째 칸을 가득 메운 채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독서 플래시몹 ‘책 읽는 지하철’에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지난 1월에 시작한 책 읽는 지하철은 이날로 8번째 운행에 나섰다. 한 달에 한 번씩 신도림역에서 홍대입구역까지 약 1시간 동안 달린다. 플래시몹 지령은 간단하다. 각자 가져온 책을 읽기만 하면 된다. 온라인에서 미리 참가신청을 받지만, 신청하지 않은 사람도 페이스북에 공지된 집합 시간에 맞춰 가면 참여할 수 있다.
이날 책 읽는 지하철 출발 예정 시각은 오전 10시 57분. 출발 시각이 가까워지자 신도림역 4번 승강장에 책 읽는 지하철 운영진과 참가자들이 모여들었다. 평소에도 책을 자주 읽는다는 박재성 씨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에 한데 모여 책을 읽는다는 게 흥미로웠다”고 행사 참가 이유를 밝혔다.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취향대로 △경제학 서적 △소설 △자기계발서 등 다양한 서적을 들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이날은 비가 와선지 예상보다 사람이 적었다. 그러나 지난 7월 진행된 플래시몹에는 무려 지하철 3칸에 참가자들이 들어찼다. 정거장을 거치면서 지하철 안에는 점점 사람들이 많아졌다. 일반 탑승객들은 평소와 다른 지하철 모습에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대림역부터 30분가량 책 읽는 지하철과 함께한 신수연 씨는 “처음엔 지하철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책 읽는 모습이 이상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고 플래시몹 구경 소감을 전했다.

▲ 송화준 대표가 독서 플래시몹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김은정 기자 ejjang1001@

책 읽는 지하철은 송화준 대표기획자의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출발했다. 유년 시절 부친의 사업 부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그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꺼리게 됐다. 그랬던 그가 대학 시절 우연히 독서모임을 접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송 대표는 “책을 읽고 내 생각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드러내고 남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통의 수단으로서 책의 역할을 직접 체험한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책모임을 진행하고자 했다. 송 대표는 “책모임을 하려면 먼저 책을 읽어야 한다”면서 “놀이처럼 사람들이 같이 어울려 재미있게 책을 읽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고 플래시몹 기획 이유를 설명했다. 고민 끝에 행사를 벌일 최적의 장소로 선정한 곳이 바로 ‘경제적 부담이 없고’ ‘대중들에게 메시지 파급력이 큰’ 지하철이었다.
지하철에서의 독서가 끝나자 책모임을 위해 이동했다. 종착지인 홍대입구역 4번 출구에는 지난 7월부터 책모임을 여는 공간이 있다. 운영진이 5~6명씩 짝을 지어주자 각자 지하철에서 읽은 책을 토대로 얘기를 나눴다. 송 대표는 플래시몹보다 책모임을 더 중요시한다. 책모임을 통해 비로소 책이 소통의 도구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의 바람대로 △대학생 △주부 △직장인 등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이 ‘책’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소통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서원 씨는 “독서 후 모임을 통해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면서 생각이나 느낌이 더 풍부해져 좋았다”고 말했다.

▲ 지난 14일 플래시몹 후 진행된 책모임 현장.

ⓒ'책 읽는 지하철' 페이스북

책 읽는 지하철은 독서의 계절인 가을을 맞아 더 힘찬 질주를 준비하고 있다. 올가을 책 읽는 지하철을 통해 스마트폰 대신 책을 집고 가을을 물씬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