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탈출, 시장으로 예~술이 들어간다!
공간 탈출, 시장으로 예~술이 들어간다!
  • 배공민 기자
  • 승인 2013.09.30 18:49
  • 호수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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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장돌뱅이' 스케치

▲ 어두워진 영등포 달시장에서 여섯 명의 장돌뱅이들이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예술을 접하기 위해서 그동안 우리는 전시장을 찾아 가야만 했다. 그 공간까지 들어가야 비로소 예술은 우리를 만나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예술과 만나려 전시장을 찾아가기만 할 텐가? “관객이 찾아가서 보는 예술은 공간에 갇힌 예술이에요.” 손한샘 작가는 예술이 사람들의 공간으로 찾아가길 원했다.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삶에서 가출한 예술을 사람들 품으로 돌려보내는 ‘예술장돌뱅이’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예술장돌뱅이라는 이름은 과거 우리네 옛 장터를 누비며 물건을 팔던 ‘장돌뱅이’에서 따왔다. 다만 과거의 장돌뱅이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들은 예술을 팔지 않고 ‘교환’한다는 것. “저희는 돈을 받고 작품을 팔지 않아요. 대신 서로의 작업과 얘기를 교환하죠.” 그들이 예술을 교환하는 방식은 과연 어떠할까? 손 작가의 설명만으로는 잘 감이 오지 않았다. 작년부터 일 년에 8번씩 수도권 곳곳의 장터에 나타난다는 그들. 백문이 불여일견, 그들을 직접 안내받기 위해 9월의 마지막 금요일에 영등포 달시장을 찾았다.
▲ 예술 장돌뱅이에 대한 설명을 적은 팻말.

왁자지껄한 한편에서 시장을 찾은 손님들과 6명의 예술장돌뱅이가 떠들썩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각각 테이블에 자신의 도구를 펼쳐놓고 각자의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했다. 먼저 노트북을 펼쳐놓고 헤드폰을 손에 든 강신우 작가에게 다가갔다. “12가지 무드의 음악 중에 하나를 고르고 텐트로 들어가세요. 음악을 들으며 당신의 비밀이나 거짓말을 마음껏 내뱉어보세요!” 행복한 느낌, 슬픈 느낌, 익살스러운 느낌……. 다양한 무드 중 ‘극적인’ 무드를 선택하고 텐트 속으로 은밀히 들어갔다. 1평도 안 되는 조그만 텐트 안 작은 의자에 앉아 헤드폰을 꼈다. “제 말 들리시죠?” 극적인 음악과 함께 밖에 있던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변조해 드릴 테니 당신만의 비밀을 말씀하셔도 좋아요. 전 사라지겠어요.” 헤드폰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덩그러니 음악과 남겨졌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얘기를 속삭였다. 기자의 비밀은 강 작가의 다음 전시에 참여한 관객들에게 몰래 전해질 것이다.
▲ 정솔(활동명 산체스) 작가가 상점을 찾은 손님을 위한 맞춤형 상을 만들고 있다.

상점을 하나 체험하고 나니 ‘예술을 교환한다’는 의미가 와 닿기 시작했다. 작가의 상점에 참여한 손님은 작가와 작품을 함께 만들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손님의 얘기와 작가의 얘기가 함께 어우러지며 교감한다. 관객과의 협업을 통해 예술이 사람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얘기의 장이 마련되는 것이다.
나무토막을 쌓아두고 손님과 담소를 나누던 김광영 작가의 상점을 찾았다. 김 작가는 자신과 손님의 얘기를 나무토막에 써주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먼저 기역부터 히읗까지의 자음 중 하나를 고르게 했다. 이응을 고른 손님에게 다음 미션이 주어졌다. “이응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떠오르는 대로 종이에 적어보세요.” 동시에 김 작가도 이응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손님이 떠올린 단어는 ‘아직.’ 손님은 자신이 왜 그 단어를 떠올렸는지에 대한 짧은 시를 적어나갔다. 20살의 풋풋한 손님은 하고픈 것 많은 이십대를 흰 종이에 고백했다. 강 작가는 ‘오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나무토막에 손님의 고백과 자신이 떠올린 단어를 연관 지어 글귀를 적어 내려갔다. ‘누가 감히!! 나에 대해 판단하는가.’ 작가는 어린 손님에게 아직은 다른 누구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따르길 바란 듯하다.
▲ 손님들과 김광영 작가의 ‘시 한토막’.

다른 상점들도 모두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했다. 손님의 기분에 맞는 카나페를 만들어주는 작가와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집을 얘기하면 그림으로 탄생시키는 ‘꿈꾸는 건축사무소’ 등. 여섯 작가들과의 교감은 이번달 5일 남양주 점프벼룩시장에서 다시 만나 볼 수 있다. 시장에서의 예술은 소통할수록 빛을 발한다. “자신의 속내를 많이 드러낼수록 작가도 손님도 모두 얻어가는 게 많아져요.”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교감하는 것. 지금까지 미술관 안에서 예술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면, 슬리퍼를 질질 끌며 검은 비닐봉지 손에 들고 돌아다니는 시장 안에서 진짜 예술을 느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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