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우 기자 (tim8487@skkuw.com)
도올 김용옥 선생이 강연을 하고 있다. /김은솔 기자 eunsol_kim@

지난 24일 우리 학교 심산김창숙연구회(회장 박승희 교수·사복)는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를 초빙해 심산 선생을 소개하는 강연회를 개최했다. 동양 철학을 전공한 도올은 심산이 추구한 사상을 중심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우리 학교 설립자인 심산 김창숙 선생은 경상북도 성주군 출신의 구한말을 대표하는 유학자다. 도올은 강연 도입부에서부터 “심산 선생은 유학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는 분”이라며 운을 띄웠다. 선생은 성리학 중에서도 진취적이며 개방적인 성격을 띤 한주학파의 학문적 훈도를 받았다. 그러한 학문적 배경에서 심산은 실천을 강조하는 선비정신과 국민이 중심 되는 근대 사회를 추구하며 타 유림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도올은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산 선생은 항상 먼저 행동하는 유학자였다”고 말했다. 연구회가 발간한 '김창숙 문존'에서도 심산은 위기의 조국을 위해 직접 구국활동을 하는 선비가 진짜 선비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년 심산은 대한협회 성주지부의 총무로 활동했고, 친일 단체인 일진회를 규탄하는 글을 중추원에 건의하는 등 사회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심산의 행동 정신은 본지 1311호에서 다뤘던 파리평화회의에 장서를 보내는 유림단사건, 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을 대상으로 한 나석주 의사의 의거 개입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심산 선생은 수구 유림들과는 다른 근대적인 정치 비전을 제시했다. 도올은 “기존의 유림들은 의병운동을 하며 왕권을 회복하는 복벽을 주장했지만 심산은 유학자임에도 왕정보다 공화정을 지지했다”고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그가 서양의 정치모델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유교 정신을 계승해 국내 현실에 적합한 공화정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조선 왕권이 약해져 외세의 침입이 잦아지고 전국적으로 민란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실학자들은 기존 체제의 문제를 지적하며 새로운 사회를 염원하는 목소리를 냈고 유학계 내에서도 백성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민본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선생은 이러한 사회, 학문적 환경에서 일반 백성이 중심 되는 근대적 정치에 대한 비전을 가졌던 것이다. 심산은 대한협회 성주지회에서 일할 당시 향촌사회가 양반이 아닌 보통의 백성 중심으로 운용되도록 변화시켰고, 공화정을 추구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참여했다.
어느 덧 심산 김창숙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났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르며 그는 우리에게 점차 잊히고 있다. 그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심산상도 2006년 제17회 상이 수여된 이래 아직까지 다시 수여되지 않았다. 이번 강연회는 이에 착안해 학우들에게 심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계기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개최됐다. 강연 후반부에 도올은 “성균인은 심산의 혁신적 선비 정신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점점 추워지면서 마음 한 쪽이 쓸쓸해지는 가을. 심산 김창숙 선생의 삶에 관심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그의 뜨거운 사상이 우리 가슴 속에 온기를 남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