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스케치 - 로버트카파 100주년 사진전

기자명 김태윤 기자 (kimi3811@skkuw.com)

총을 겨누며 포화 속으로 달려가는 군인들. 그 뒤에는 총이 아닌 카메라를 들고, 흔들리는 뷰파인더를 부여잡으며 몸을 던지는 종군기자들이 있다. 종군기자는 전쟁에 종군해 일선이나 군의 상황을 보도하는 기자다. 그들의 사진 한 장, 글 한 구절은 탱크 바퀴 아래 으스러지던 인간의 모습, 폭력과 증오의 현장을 고발한다.
 
여기, 종군기자의 전설로 불리는 로버트 카파가 있다. 이전까지 보도사진은 전쟁의 애국성과 영웅성을 강조했다. 카파는 기존 보도사진에서 탈피해 ‘있는 그대로’의 전쟁 얘기를 사진으로 담았다. 인간에 대한 애정은 전쟁을 혐오하는 그를 전장의 구석구석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는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다”라는 말을 남겼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은근한 페로몬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그에 이끌려 무엇인가에 ‘한 발짝’ 더(zoom-in) 다가서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로버트 카파전을 향해 뷰파인더를 돌렸다.
 

카파, 맨몸으로 고배율 카메라가 되다
전시는 스페인 내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인도차이나 전쟁까지 20세기 초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전쟁과 함께한 그의 40년 짧은 일대기를 11개의 파트로 나눠 보여준다. 전시장의 초반부에는 카파와 그의 연인 게르타가 함께 취재한 스페인 내전의 사진들, 특히 1995년 비밀스레 발견된 멕시칸 수트케이스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멕시칸 수트케이스는 스페인 내전 중 로버트 카파, 제르다 타로, 데이비드 세이무어가 촬영한 필름이 담긴 판지 상자다. 그 와중에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 한 장. 코르도바 전선의 참호에서 뛰쳐나온 공화파 병사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촬영한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이다. 완벽한 구도와 극적인 순간 포착은 피카소의 ‘게르니카’, 종군기자 출신 작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더불어 스페인 내전이 낳은 3대 예술작품으로 꼽힌다. 옆에는 전선으로 향하는 군 수송열차가 출발하기 전 연인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공화파 군인의 사진이 보인다. 그는 다시 돌아올 것을 확신하고 있었을까. 그들 앞에 드리운 상실의 순간에 마음이 아리다. 들것 위에 누워 있는 병사를 바라보는 동료의 사진이 보인다. 초점이 흐려진 동료의 눈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불안해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오쩌둥의 정치 선전용 연극에 동원되는 소년병사들, 일본의 공습 후 폐허가 된 집 잔해를 둘러싼 모습을 담은 중일전쟁 전시관을 지나쳐 제2차 세계대전을 담은 전시관으로 향한다.

▲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 이영준 기자 spiritful45@

 

따뜻한 손길로 셔터를 누르다
멀찌감치 서서 카파의 ‘오마하 해변에 착륙하는 미군 부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희뿌연 먼지가 눈앞을 가리고, 빗발치는 총탄의 총성이 들린다. 어느새 관객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촬영하는 카파가 되고, 두 손이 떨려온다. 단순히 총성인 줄 알았던 그 소리는 어느새 카파의 심장 소리가 되어 다가온다. 소년병의 장례식을 촬영하고, 독일군 아이를 낳은 프랑스 여인이 삭발을 당한 채 쫓겨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마드리드 공습 이후 무너진 아파트의 잔해 속으로 다가가던 카파의 심정은 어땠을까.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날, 승리의 순간을 앞두고 죽음을 맞은 어린 병사를 담은 보도사진은 승리의 순간 앞에 흔적 없이 묻혀버릴 한 병사의 인간적 가치에 집중한다. 전투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아파트 꼭대기 층으로 올라간 카파는 승리를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꾸던 어린 미군 병사와 얘기를 나눴다. 그때 돌연 들린 총성과 쓰러지는 어린 병사. 몇 시간 후 승리의 함성은 카파의 허망하고 비통한 눈물을 뒤로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그는 이스라엘로 향했다. 텔 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과 아랍에 대항한 전쟁을 취재했다. 시각 장애인 유대인과 그 가족들을 위한 이주민 수용소에서 이주민을 식당으로 안내하는 어린 소녀 사진에서 전쟁,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그의 휴머니스트적 시선이 느껴진다.

▲ 전선을 향하는 군 수송열차가 출발하기 전, 연인과 작별 인사를 하는 공화파 군인. 이영준 기자 spiritful45@

로버트 카파는 ‘전쟁’ 그 자체를 넘어 그 속의 군상들의 일상적 얘기에 집중한다. 군복을 입은 여성 구급차 운전자들이 뜨개질을 하는 모습,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속삭이는 노부인과 군인의 모습. 총과 탱크의 전쟁은 모른 채 천진한 눈싸움에 참전한 중일 전쟁 당시 꼬마 아이들. 차갑고 무거운 강철의 촉감, 폐혈관을 강하게 수축하는 뿌연 연기와 먼지만이 가득할 것 같은 전장 속에서도 우리의 삶과 얘기가 계속될 수 있는 것은 그의 사진이 집중한 ‘일상’ 때문이 아닐까.
 

영혼이 담긴 카파이즘, 전설로 남다
모퉁이를 돌자 인도차이나전쟁 당시의 보도사진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가 찍은 사진은 ‘지뢰밭의 군인들’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1954년 5월 25일 2시 30분경, 인도차이나 전쟁 중. 타이빈을 향해 걸어가는 프랑스군의 뒷모습을 찍고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지뢰를 밟고 죽음을 맞는 카파. 죽음의 순간까지 그의 왼쪽 손에 쥐어있던 카메라는 현상을 위해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실렸고,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다.
카파의 저널리즘, ‘카파이즘’은 언론인의 의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간 삶의 본연이자 최상인 목숨을 내려놓고 전쟁의 가장 가까이로 다가간 그의 분투는 정치적 논리에서 벗어나 보편적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다가갈 것을 얘기한다. 만족스럽지 않다면, 진실에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다. 제법 쌀쌀함이 느껴지는 가을, 총성보다 더 크게 울려오는 휴머니스트 카파의 심장 박동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