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종윤 기자 (burrowkr@skkuw.com)

노숙인과 인문학이 만났다. ‘성프란시스 대학(이하 성프란시스)’은 ‘왜 노숙인은 거리의 삶을 벗어나지 못할까’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거리에서 하루살이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앞날을 바라볼 여력은 부족해 보였다. 성프란시스는 인문학이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본지에서는 성프란시스가 설립된 취지와 현황을 소개하고, 인문학을 통해 새 삶을 찾아가려는 노숙인의 얘기를 담아봤다.

   ▲ 김동훈 교수가 성프란시스 강의실에서 예술사 수업을

   진행하고있다./ ⓒ성프란시스 대학 제공

성프란시스는 2005년 9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이하 다시서기)’가 ‘성프란시스 인문학 과정’을 열면서 시작됐다. 다시서기는 외환위기 직후 노숙인 상담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컨테이너 한 동으로 시작해 현재는 △거리 상담활동 △급식사업 △무료 진료소 △자활 근로 △주거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성프란시스는 다시서기가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기업의 후원을 받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이다. 매년 약 60명의 노숙인이 지원하지만, 재정구조가 취약한 데다 공간이 좁아 전부 선발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다시서기 소장과 실장 △성프란시스 강사진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운영위원회 위원들이 면접을 통해 인원을 뽑고 있다. 올해는 9기로 23명의 학생이 선발됐다.

노숙인도 선생님이 되는 곳
성프란시스는 본지 1452호와 1487호에도 소개된 바 있는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학 교육과정 ‘클레멘트 코스’를 벤치마킹했다. 전 다시서기 소장이자 초대 성프란시스 학장인 임영인 신부가 개설을 주도한 이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는 1년 과정이다. 성프란시스는 노숙인에게 자활 의지가 가장 필요하다고 본다. 노숙인 대부분은 가정 해체 등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자활 의지가 훼손돼 있다. 성프란시스에서 예술사를 담당하는 김동훈 교수는 “인문학은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그들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갖게 해 준다”고 노숙인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성프란시스의 가장 큰 목적은 노숙인에게 ‘자존감’과 ‘소속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성프란시스에서는 모든 이들이 노숙인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호칭을 통해 그들의 자존감을 보다 높이기 위함이다. 또한, 노숙인들은 성프란시스 9기라는 울타리를 통해 관계를 맺고 정을 쌓는다. 성프란시스 정경수 학무실장은 “노숙한다는 것은 혼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 명이라도 자기편이 있다면 절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강한 소속감을 바탕으로 졸업 후에도 학교를 찾아오고, 강사들과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지난 2011년에는 총동문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인문학으로 이루는 작은 변화
노숙인들이 배우는 과목은 △글쓰기 △문학 △역사 △예술사 △철학 총 5가지다. 수업은 하루에 2시간씩 일주일에 3회 이뤄진다. 글쓰기는 1년 과정이고, 1학기에 문학과 철학이 2학기에 역사와 예술사가 열린다. 글쓰기는 성프란시스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과목이다. 오랜 세월 인간관계를 맺지 못해 자기표현에 서툰 노숙인들은 글쓰기를 통해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의사소통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이 때문에 성프란시스에서는 1년 내내 글쓰기를 가르치고, 방학 중에도 특강으로 글쓰기 과정을 진행한다.
인문학 강좌는 실내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현장학습을 다닌다. 현장학습은 공연이나 전시회를 관람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문학과 예술사 강의의 연장 선상이기도 하다. 여름방학에는 일반 대학생처럼 MT도 다녀온다. 정 학무실장은 “문화 활동이나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알아야 삶을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고 말했다.
 

성프란시스에는 지난 1기부터 8기까지 181명의 노숙인 학생이 거쳐 갔다. 현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58명도 있었지만, 123명의 노숙인이 무사히 인문학 과정을 마쳤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노숙인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에 의구심을 가진다. 사실 지금껏 성프란시스를 통해 엄청나게 큰 변화를 겪은 사람은 없다. 정 학무실장은 “1년 인문학을 배워 당장 번듯한 직업을 갖고 떼돈을 버는 등의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며 “왜 돈을 벌어야 하고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삶에 작은 변화를 만드는 것, 새 삶을 향해 한 발짝 내딛게 하는 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늘도 성프란시스에서는 인문학과 함께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