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나는 전태일이다”. 혹시 학우분들께서는 셔틀버스 종착역 농구 코트 쪽에 걸린 거대한 현수막을 보셨거나, 자보에 적힌 “나는 전태일이다”라는 문구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이는 이번에 중앙동아리 노동문제연구회 주최로 열게 된 제11회 전태일 열사 추모제의 제목입니다. 그런데, 전태일 열사의 추모제 제목인데 굳이 “나는 전태일이다” 이라는 말이 들어가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태일 열사가 온몸에 불을 붙이고 돌아가신 1970년 11월 13일. 열사의 몸은 타들어 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마저도 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가 70년의 전태일이 외친 것과 똑같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자신이 일하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대우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 모두가 이 시대의 전태일이기에 이 이름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공장이 단순히 쥐죽은 듯 일만 하는 곳이 아니라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학생들 역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사회라는 곳은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가 잘못된 것들을 이야기하고 바꿔나가는 공간입니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학교를 자치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전태일의 정신을 학생으로서 이어나가는 것인 동시에, 우리가 학생 “전태일”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학교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오직 취업만을 위한 곳이라는 게 이상하지 않은 현실입니다. 하지만, 학생회 선거가 학생들의 참여와 자치를 대변하기보다는 상품을 줘가면서 투표를 독려하는 것 역시 지금의 현실입니다. 적어도 잘못된 것들에 대해서는 학생이 말할 수 있고, 자치를 실현하는 학생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란 개념이 부재했던 공장을 정치의 공간으로 만들고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낸 전태일 열사처럼, 학생도 “전태일”이 되어 학교라는 공간의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추모제는 전태일의 이름을 기억하고, 학생인 우리가 어떻게 그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AS 노동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다산 콜센터 여성 노동자, 유성기업 노동자. 이 시대의 전태일들이 겪는 부당함, 그리고 이에 맞서 노동조합을 통해 바꿔 나가는 모습을 연극으로 표현했습니다. 추모제에는 실제로 많은 노동자분들이 오셨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이 학교 밖의 “외부인”이 아니라 학생들과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다른 곳도 아닌 바로 학교에서 전태일 열사 추모제를 연다는 것은 이 공간이 학생들과 노동자의 연대의 장으로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전태일이다”. 우리들의 학생사회에서 과연 “학생 전태일”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할 수 있을지, 그 희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