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안기부 터 스케치

기자명 신혜연 기자 (shy17@skkuw.com)

 

▲ 고문의 흔적은 유스호스텔로 개조되며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영준 기자 spiritful45@

최근 서울시가 남산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터를 ‘인권 교육의 장’으로 만들겠다던 애초 계획을 번복해 논란이 되고 있다. 올해까지 안기부 건물터에 안기부에서 자행된 사건들을 기록한 안내표지판을 설치하겠다고 밝혔으나, 관련 예산을 배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다. 중앙정보부(이하 중정)와 안기부를 품은 채 인권유린의 현장이 됐던 남산의 그늘진 어제를 되돌아봤다.

황혼을 맞은 남산은 역사의 숨결을 되새기듯 더없이 적막한 모습이었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한 남산이지만, 암울한 과거는 그 입구부터 스며있었다. 남산 입구 근처에 위치한 서울특별시 도시안전실. 당시 대학생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는 안기부 ‘6국’이 30여 년 전 이 건물의 이름이다. 학원 사찰을 담당하던 이곳에서 반독재와 민주화를 외친 수많은 학생들과 관련 인사들이 고문당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2차 인혁당사건’이다. 유신체제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던 1974년, 중정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인민혁명당(이하 인혁당) 재건위원회 조직이 정부 전복을 시도했다”고 발표했다. 다음 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관련해 도예종 등 8명은 사형을 선고받고 24시간 만에 이를 집행 받았다. 그러나 역사의 판단은 달랐다. 2007년 서울중앙지법은 이들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도예종은 최후진술에서 “50일간 중정 6국에서 취조를 받으며 네, 다섯 차례 고문을 당했다”고 밝혔다.  
남산 입구 쪽으로 따라 들어가면 안기부 청사로 쓰이던 TBS 교통방송청사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보인다. 조금 더 들어가면 갈림길 오른쪽으로는 정원까지 갖춘 깔끔한 이층집과 거대한 유리 건물이 있다. 현재 ‘문학의 집’으로 쓰이는 이층집은 본래 중앙정보부장(안기부장) 공관이었다. 맞은편 건물은 ‘산림문학관’으로 본래 경호원들이 쓰던 공간이다.
의도와는 관계없이, 남산은 수많은 문학 작품을 낳았다. △고은 △김지하 △문익환 △이문구 △천상병 △황석영 등 무수히 많은 문인들이 어둠의 시대를 기록한 대가로 남산에서 고초를 겪었다. 그리고 시대의 아픔은 이들을 통해 시로 태어났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가 왼쪽으로 틀면 큰 공터가 펼쳐진다. 안기부 제1별관이 있던 이 자리는 1972년, 중정이 처음으로 막사를 세운 곳이다. 원래 본관 다음으로 큰 건물이었지만 '국가 기밀'이라는 이유로 폭파된 이후 현재까지 공터로 남아있다. 공터를 지나면 곧 7층 규모의 서울유스호스텔이 나온다. 안기부의 남산본관으로 쓰이던 건물 곳곳에서 고문이 자행됐지만, 유스호스텔로 개조되면서 역사의 흔적은 모두 지워진 상태다.
중정의 가장 악명 높은 사건도 이곳에서 발생했다.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사건이 그것이다. 1973년 10월, 대학생들의 유신 독재 반대 시위가 한창인 당시 서울대 법대에 재직 중이던 최종길 교수는 교수회의에서 학생들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얼마 후 중정에 연행된 그는 사흘 뒤 본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중정은 최 교수가 간첩임을 자백하고 자살한 것이라 발표했으나, 2006년 법원은 '국가 잔혹 행위로 인해 사망'했다고 판결했다. 
유스호스텔 왼쪽 길로 들어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무지갯빛으로 채색한 터널이 나온다. 어둠이 깔리고 전등이 켜지면서, 터널 안에서는 알록달록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너머에 있던 건 여느 곳보다도 짙은 암흑의 역사였다. 지상 4층, 지하 2층의 이 건물은 서울특별시 별관으로 쓰이기 이전에 중정의 ?5국?이 있던 건물이다. 간첩 사건을 조사하던 이곳에서는 특히 악랄한 고문들이 행해졌다. 역사학자 한홍구 씨는 “이곳의 고문에 비하면 본관에서 받던 고문은 마사지 수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건물은 올해 민주화운동기념관이 들어서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예산문제로 무산되면서 서울시에서 임시 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잊으려는 자와 기억하려는 자. 남산의 역사는 끝없는 갈등의 반복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시민사회에서는 남산의 역사를 보존하자는 목소리를 서울시에 꾸준히 전해 왔다. 그러나 시에서는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1990)’, ‘남산 르네상스 프로젝트(2009)’ 등을 내세우며 오히려 역사의 흔적을 없애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현재 남산에 남아있는 안기부 건물은 5개뿐이다. 그나마도 본관은 서울유스호스텔로, 부속 건물들은 △도시안전본부 △소방방재본부 △TBS 교통방송국 등으로 쓰이고 있다.
되풀이할 것인가, 기억할 것인가. 역사가 빠져나간 자리에서, 남산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