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신혜연 기자 (shy17@skkuw.com)

▲ '희망식당 하루 시즌2'를 찾은 시민들이 모여 밥을 먹고 있다. 김은솔 기자 eunsol_kim@
밥을 먹는 행위는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무차별 도살된 고기를 먹는 건 당신이 공장식 사육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핍박하는 사업장에서 점심을 먹는 건 곧 그 부당한 체계에 대한 암묵적인 긍정이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흐름은 없을까? 내 한 끼 밥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매몰찬 세상을 데울 온기가 되는 선순환.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밥집이 대학로 카페 ‘벙커원’에 문을 열었다. 해고 노동자들에게 수익금 전액을 지원하는 ‘희망식당 하루 시즌2’가 바로 그것이다.
식당을 하루 동안 빌려 열린다는 점 때문에 ‘하루’라는 이름이 붙은 희망식당은, 지난해 3월 서울 동작구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5호점을 개점하기에 이르렀으나 애초 계획대로 연말에 모든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2013년 10월, 추운 겨울 연대의 손길을 희망하는 해고 노동자들을 위로하고자 시민들이 다시 힘을 합쳤다.
하루는 시민들의 완전한 자치 공간이다. 장소를 제공하는 이도, 음식 만드는 이도, 설거지하는 이도, 식당을 찾는 이도 모두가 ‘함께 먹는 밥이 값지다’는 신념으로 모인 시민들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수백 명이 자원봉사자로 나서고, 하루에 백여 명의 사람들이 식당을 찾으면서 얻은 수익금으로 총 40여 곳의 투쟁 사업장을 지원할 수 있었다. 식당을 총괄하는 일일 점장도 시민들의 몫이다. 지난달 28일에 열린 시즌2 네 번째 하루의 점장 역시 희망식당의 오랜 자원봉사자였다. 시즌1부터 함께해 왔다는 황선영씨는 “일손이 부족할 때마다 거들다가 일일 점장까지 하게 됐다”며 “단체도 없이, 단지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시작한 희망식당에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주셔서 늘 감사하고 보람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의 메인 주방장은 삼성에버랜드 노조 조합원들이다. 에버랜드에서 음식을 만들던 노동자들이 다른 해고노동자에게 힘을 주고자 나선 것이다. 박원우 지회장은 “손님들이 많이 오셔서 음식 맛있게 드시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주방시설이 없는 카페에서 진행하다 보니 모든 음식을 미리 준비해 와야 하는 어려움도 컸지만, 손님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벙커원을 자주 찾는다는 김준한씨는 “희망식당에 오면 항상 즐겁다. 밥도 맛있고 무대도 즐거울뿐더러, 힘든 상황이지만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또 올 생각”이라고 밝혔다.
음악다방을 표방한 희망식당 시즌2에는 감미로운 음악과 사연, 그리고 활기찬 무대가 이어졌다. 민중가수 '꽃다지'의 공연으로 시작한 이번 음악다방은 천주교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이 디제이를 맡아 '1994년 마지막 주'를 주제로 당시 히트곡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날 식당에는 아이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모들부터 대학생, 직장인, 해고노동자들까지 90여 명의 다양한 손님들이 모였다. 김 사무국장은 “예전보다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참여가 늘어난 것 같다”고 하루의 흥행을 해석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한 밥을 먹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민 간의 연대에 큰 힘이 된다고 본다”며 “이런 자리가 앞으로도 많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추운 날씨에도 백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오늘도 희망식당을 찾았다. 짧지만 타인의 삶에 희망으로 다가가기에 충분한 '하루'가 아니었을까. 서로에 대한 관심과 연대가 있는 그곳에, 음악보다 감미롭고 밥보다 따뜻한 이야기가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