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우 기자 (tim8487@skkuw.com)

▲ 지난달 27일 600주년 기념관에서 김성학 교수가 법제사학 강연을 펼치고 있다. 김은정 기자 ejjang1001@
지난달 27일 우리 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인문한국(HK)연구소는 “한국 법제사 연구에 대한 몇 가지 비교사적 고찰”이라는 제목 하에 김성학 성 클라우드 대학 교수를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다. 

한국의 법과 법제사학 연구의 필요성
법제사학은 법제, 즉 제도로서 법의 역사 및 변천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법은 오랜 역사를 거쳐 발전돼 온 것이고 법의 내면에는 이런 역사적 흔적들이 남아있다. 법제사학은 법의 기원을 찾아 역사적 흔적들이 현대 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파악한다. 그러나 국내 법제사학 연구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외국 학계와의 교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우리 법의 역사에 대해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많다. 김 교수는 “미국의 한 저명한 법학자가 한국에서 아직도 일본의 민법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착각을 했다”며, “한국의 법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한국 법제사에 대한 연구와 이를 외국의 법학자들에게 알릴 필요를 느꼈다”고 강연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근대화 시기의 관습법에서 벗어나야
김성학 교수는 관습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한국 법제사를 논했다. 관습은 특히 대중 사이에서 행해지는 문화 및 전통을 뜻하는데, 우리나라의 현대법은 공식적으로 관습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있다. 과거 조선 시대에는 관습이 법의 형태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국가에 의해 죄와 벌이 성문법의 형태로 법전에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전통적으로 성문화된 형태의 법전에 의존하던 우리의 법 관념은 일제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크게 변화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관습법 개념은 식민지 시기에 조선민사령을 통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조선민사령’은 일본의 법을 도입하되 식민지 조선 내에서 조선인 간의 분쟁은 조선인의 관습을 통해서 해결한다는 것이 핵심 골자였다. 이미 관습법을 도입해 법원(法源)을 일체화하고 국가를 중앙화한 경험이 있는 일본은 이를 식민지 조선에 무리하게 적용해 한국의 법 체계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김 교수는 “당시 일본은 △경국대전 △속대전 △예기 등 유교 경전에 나와 있던 모든 내용을 관습이라 불렀다”고 설명했다. 이후 관습법의 영향은 아직 대한민국 현대법에 남아있다. 우리나라 민법 제1조에는 ‘민사에 관하여 법률의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고 명시돼 있다. 

직계존속에 대한 고발 금지법은 관습법의 폐해
김 교수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관습과 관련해 내린 판례의 불합리성에 주목한다. 법원은 최근 기존 민족주의적 법률 해석에 몰두하는 경향에서 벗어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 20여 년간 헌법재판소는 유교적 전통 가족제에 기초한 민법 조항을 많이 무효로 했다. △동성동본불혼제 △종중제 △호주제의 위헌 선언이 그 대표다. 그러나 관습은 현대 법에 여전히 영향을 끼친다. 형법 조항에서도 드러난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직계비속에 대한 직계존속의 고소, 고발을 금지하는 형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조항은 조선 시대 경국대전, 속대전에 있는 ‘고존장’ 조항에서 유래한 것으로, 헌법재판소는 효에 기초한 우리 전통 관습은 개인의 권리에 대한 지나친 침해가 아니라고 했다. 이에 김 교수는 “직계존속에 대한 고소 고발을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일제 강점기에 무리하게 들여온 ‘관습법’이라는 제도가 우리의 전통적인 유교 사상과 맞물려 현대적인 평등권 개념의 적용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법제사 연구의 의의
지난 백여 년간의 한국 법제사는 변화의 연속이었다. 변화의 역사 속에서 현대법의 뿌리를 추적하는 법제사학은 우리나라 법 제도의 기원과 역사 흔적이 현대법에 끼친 영향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더 나아가 이는 내면에 숨은 ‘진실’을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법제사의 연구가 없다면 현대법에 나타나는 불합리성의 역사적 기원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김 교수는 “고문헌에 나타나는 법적 사실의 기원을 찾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이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아직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법제사학. 앞으로의 국내외 학자들과 대중의 관심이 더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