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블로거 '로쟈' 이현우 인터뷰

기자명 나다영 기자 (gaga0822@skkuw.com)

 

  당신은 일주일에 몇 권의 책을 읽는가? 모두를 부끄럽게 만드는 질문 앞에 서평의 고수가 나타났다. △당대의 서평가 △인문학 전도사 △지젝 전도사로 불리며 서평계에서 필명 ‘로쟈’로 유명한 이현우다. 책 좀 읽는 네티즌 사이에서 그는 전설이라 불린다. 그의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에는 매일 2500명이 넘는 사람이 들렀다가며, 총 방문자는 300만 명에 이른다. 블로그 뿐만 아니라 온라인 서점과 각종 일간지에서도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가로 평가한다. ‘인터넷 서평꾼’이라 불리는 그에게 참 친해지기 힘든 ‘독서’와 ‘인문학’에 대해 묻는다.

 

 

 

■ 언제부터 그렇게 온라인 서평계에서 유명해졌나

인터넷 공간에 서평류의 글을 올린 활동은 1999년부터 했다. 초기에는 ‘비평고원’이라는 카페에서 서평을 쓰다가 온라인 서점인 ‘알라딘의 서재’에서 이름이 알려졌다. 알라딘에서 추천을 많이 받으면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데 몇 개 써본 마이리뷰가 반응이 좋았다. 리뷰를 그렇게 많이 쓴 것은 아닌데 책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자주 포스팅 한 게 영향이 큰 것 같다. 

블로그에 서평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3~2004년부터다. 그때 처음 블로그가 생겨 지금 사용되는 ‘온라인 개인서재’와 함께 ‘북 블로거’, ‘서평블로거’ 등의 개념이 만들어졌다. ‘온라인 서평꾼’이라는 별명은 2007년 한겨례 신문에서 처음 사용한 것 같다. 특별히 나를 지칭하는 단어는 아니었는데 지금까지 그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이 더 없어서 검색하면 나만 뜬다. (웃음) 

 

■ 블로그에 가봤더니 신간들을 몇 권씩 주제별로 묶어서 추천하더라. 

그것이 ‘인터넷 서평꾼’들의 역할이다. 주제별로 묶어 여러 책을 한 번에 추천한다. 책들 사이의 관계, 문학과 사상의 지도를 그려 가이드처럼 추천해 주는 것이다. 도서관 사서의 역할과 같다. 모든 책을 다 읽지는 못한다. 읽는 것도 있지만 책을 그냥 ‘본다’. 책을 ‘보는’ 걸로는  한국에서 랭킹 안에 들 수 있다. (웃음) 책에 대해 검색하고, 책을 만지고 훑어보는 것은 거의 업자수준으로 한다. 일주일에 거의 수십 권을 그렇게 스크린한다. 이걸 책의 면접을 본다고 말한다. 사람을 그냥 보는 거랑 사귀는 거랑 다르지 않나. 사람을 만나보고 더 깊게 알아가는 것은 좀 더 여러 번 만난 후다. 면접이 통과돼 시간 여유가 생기면 그때 그 책을 깊게 만난다.   

 

■ 도대체 책을 얼마나 읽는 건가. 

너무 많이 받는 질문이다. 48시간을 사는 게 아닌 이상 보통사람과 비슷하거나 더 적게 읽는다. 유별나게 독서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어릴 때부터 숫기가 없어서 사람 사귀는 것보다 책을 사귀었다. 초등학교 때 책과 강렬하게 만난 기억이 있다. 하루 이웃집에 놀러 갔는데 그 집 서재에 전집이 꽂혀있는 걸 보고 충격받았다. 아마 ‘세계소년소녀문학전집’이었을 것이다. 그런 광경을 그 때 처음 봤다. 서점에 가본 적도 없어서 책이 세트로 50권 모여 있다는 것이 굉장히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전집을 4~5번은 반복해서 읽었던 것 같다. 그냥 책 안에 있는 이야기들이 좋아서 읽었다.

대학교 때는 책을 사서 넘버링하는 습관이 있었다. 연말에 300권대까지 간 것을 봐서 하루에 한 권 꼴로 산 건데 요새는 더 산다. (웃음) 출판사에서 보내는 책이랑 개인적으로 사는 걸 합치면 일주일에 30권 씩 일 년에 1500~2000권 정도 새 책이 생긴다. 보관 문제 때문에 조만간 이사를 한다. 저번 주에 산 책을 못 찾고 있다. 심각하다. 

 

■“인문학을 읽기 전에 로쟈에게 물어보라”고 하던데, 어쩌다 인문학 전도사가 되었나

인문학 전도사는 좀 과장된 표현인 것 같다. 과거 ‘쿤데라와 고신의 공원’이라는 블로그 운영자와 죽이 맞아 인문학 관련 글을 많이 썼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슬라보예 지젝과 가라타나 고즈니 관련 포스팅을 많이 해서 이름이 알려졌다.   

나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했다. 최근에 나온 인문학 책들을 많이 소개했고, 그다음엔 관련 이론서나 번역서가 나오면 그것에 대한 리뷰나 코멘트를 많이 올렸다. 그때 고전번역에 대해 독한 코멘트를 많이 했는데 그게 네티즌에게 약간 어필을 했던 것 같다. ‘신뢰할 만한, 참고한 만한 블로거’로 인식되는 데 말이다. 신랄한 비판의 글 때문에 출판사들의 미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물론 이건 책에 좀 관심 있는 네티즌에 한정된 이야기다. 아마 날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웃음)

 

▲ ⓒ알라딘

■ 얼마 전 슬라보예 지젝의 방한으로 해설서인 <로쟈의 지젝 읽기>가 더 유명해졌다. 본지에서도 그를 다뤘는데 어쩌다 지젝의 전도사로 불리게 되었나

지젝의 오랜 독자였다. 96년 국내에 처음 소개됐는데 본격적으로 읽은 것은 2000년 정도부터다. 읽다가 굉장히 강한 인상을 받아서 지젝의 모든 책을 섭렵했다. 이유를 물어본다면 현상에 대한 문제를 다시 정의하게 만드는 지젝의 철학이 맘에 들었다. 책을 읽고 나면 사회문제 저반의 현상이나 사태를 지젝의 눈을 통해서 다시 보게 된다. 세계에 대해 통찰하면서 다시 눈뜨게 되는 느낌이 든다. 

초기 번역본들의 질이 좋지 않아서 번역서로는 이해가 잘 안 되더라. 그래서 오역에 대한 지적도 하고 번역도 직접 하면서 많이 떠들다 보니까 어쩌다 전도사가 됐다. 그러다 번역서를 너머 그의 사상을 다룬 <로쟈의 지젝 읽기>를 쓰게 됐다.

 

▲ ⓒ알라딘

■ 요새 다들 인문학 시대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나는 인문학 자체에 대해서는 양가적인 태도를 지닌다. 인문학의 주류는 서양 인문학이다. 서양에서 인문학은 최상위 계층을 위한 교양교육이었지 중산층이나 빈곤층을 위한 교육이 아니었다. 백년 전 우리는 10% 정도만이 책을 읽고 70%가 문맹이었다. 한국사회에서도 독서가 중산층과 빈곤층으로 확장된 것은 두 세대가 채 되지 않는다. 빈곤층을 위한 희망인문학이 가능해진 것도 최근에 와서다.

그럼에도 인문학은 또 다른 계급투쟁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1:99의 경쟁사회에 산다. 1명의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 시스템을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우리에겐 없어 보인다. 우리가 그 문제의식 자체를 아예 차단해버린 것이다. 그것이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우리는 대부분 99%의 입장이다. 이 99%가 배우는 인문학은 현재의 부당한 사회 시스템에 대해 저항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인문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 시스템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오히려 경쟁력이 될 것이다. 생존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더 가치 있고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이 목표라면 말이다.

 

■언제까지 계속 서평을 쓸 것인가

서평은 어떠한 중대한 사회적 역할 같은 것이다. 지식사회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으로선 대체할 만한 인물이 매우 드물다. 십 년 동안 책을 검색하고 읽는 것을 누가 하겠냐. 좋아서하지 않으면 힘들 것이다. 일을 대신해줄 후임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교체가 될 것이다. 서평가는 절대 어렵지 않다. 책을 읽고 남들이 읽기에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면 서평가의 자질이 있는 것이다.

 

■책 읽기 싫어하는 성균인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이 질문은 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책을 안 읽으면 죽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지가 자기의 선택이라고 착각한다. 책을 안 읽는 건 본인의 선택이라면서. 하지만 대개 책을 안 읽는 경우보다 ‘못’ 읽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을 착각하는 건 안쓰럽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입맛에 맞는 작가를 세 사람정도 전집으로 읽어라. “나는 책과 인연이 없어”라고 하더라도 “나는 이 작가는 읽어”라고 하면 나름 괜찮은 대학생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여도 되고 과학자, 철학자여도 된다. 그것조차 부담된다면 해설서나 서평집을 읽어라. 무슨 책을 읽을지 로드맵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일단 읽어라. 독서의 효용이나 즐거움에 대해서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독서가 안 맞는다고 말하는 것은 편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