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락된 기록 -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기억展 스케치

기자명 김태윤 기자 (kimi3811@skkuw.com)
기억과 기록 사이엔 필연적 틈새가 존재한다. 현재가 아닌 과거의 기억은 개개인의 입장에 따라 쉼 없이 각색되고 변질된다.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열리는 <누락된 기록I -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기억> 전시는 기억과 기록 사이의 필연적 간극을 다룬다. 인간의 기록이 안고 있는 숙명적인 한계, 그 한계 속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기억의 흐름을 바라보는 우리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변질되고 누락돼가는 기억의 파편들, 그 무수한 퍼즐 조각을 맞춰보고자 복합문화공간 에무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이 있다. 김종구 작가의 ‘잃어버린 것, 서 있는 사람’이다. 손발이 깨지고 뼈대마저 다 드러난 데다 색까지 바래버린 훼손된 여인상. 바로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지나온 삶이다. ‘누락된 기록’ 프로젝트는 위안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파편화된 여성의 삶과 이를 바라보는 현재 시점의 기억을 △설치 △영상 △조각 △회화 등의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조명한다. 
▲ 김종구 작가의‘잃어버린 것, 서 있는 사람'. 온 몸이 훼손되고 색까지 바랬다. 이영준 기자 spiritful45@
발걸음을 옮겨 김지호 작가의 ‘Mirror-CCTV (기억과 기록)’를 만난다. 고장 난 감시용 CCTV와 몇 개의 손거울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Made in Japan’이 적혀있는 CCTV는 이제는 작동하지 않고 고장 난 채 멈춰 있다. 얼굴을 비춰 보지만 CCTV는 아무것도 담지 못한다. 이번엔 여러 개의 거울에 얼굴을 비춰본다. 가느다란 막대기 끝에 불안한 구도로 붙어 있는 거울들은 우리의 모습을 어떠한 왜곡도 없이 보여준다. CCTV-거울의 관계는 일본-위안부의 관계를 상징한다. 낡고 고장 난 ‘Made in Japan’ CCTV는 더 이상 현실을 담으려 하지 않는다. 거울들은 현실을 가감 없이 비추며 이런 CCTV를 일깨운다. 그러나 깨지기 쉬운 거울 앞에 선 우리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시간 속으로 사라져갈 가까운 미래, 거울이 깨져버릴 그 날이 예상돼서 일까.
기억과 기록 사이의 대치. 이는 기록이 기억을 쉼 없이 은폐하려 한다는 것에 기인한다. 전시장 한쪽 벽 가득히 위장 무늬가 반복된다. 이현주 작가의 ‘Camouflage’다. 반복되는 패턴 안에는 동일 무늬의 군복을 입고 있는 가냘픈 소녀의 뒷모습이 숨겨져 있다. 군복의 위장무늬는 피해 여성의 어린 시절의 삶을 끝없이 은폐한다. 그녀들은 아직도 소녀시절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우리에게 드러난 것은 백발의 샌 머리뿐이다. 
기록은 기억을 은폐하다 못해 왜곡하기까지 이른다. 안종연 작가의 ‘여인, 인생’은 개개인의 이해관계 속에서 상이하게 비춰지는 위안부 피해 여성의 삶을 *렌티큘러 기법을 통해 표현한다. 이쪽저쪽 발걸음을 옮겨 서길 반복하자 화면 위에 위안부 할머니의 얼굴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마저도 일그러진 모습이다. 우린 겹쳐있는 레이어 만큼이나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그들의 삶을 바로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가 강제 동원된 지 70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피해 여성이 남긴 기억과 제3자에 의한 기록 그 중간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최태훈 작가의 ‘statue of surface’는 위안부 소녀상과 동일한 사이즈의 의자를 제작하고 그 위를 소녀가 아닌 수요 집회 현장의 확성기 오브제로 대체했다. 의자의 표면에는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위안부에 대한 글이 빼곡히 적혀있다. 작품에서 위안부 할머니의 모습이나 형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현재 우리의 시선이다.
전시장 끝 작은 방으로 들어서자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라는 동요가 연신 울려 퍼진다. “순덕꽃, 옥분꽃, 정순꽃, 숙이꽃…….” 70년 전, ‘꽃 찾으러 왔다’던 일본군은 그녀들의 삶을 짓밟았다. 전시회장 어디에서도 위안부 피해 여성의 직접적인 사진이나 목소리는 없다. 피지 못한 꽃들이 역사의 피안으로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꽃을 찾아야 할 차례다. 누락되고 왜곡되는 기억들, 기억의 파편들마저 사라지기 전에 우린 무얼 해야 할까. 이제 남은 몫은 우리에게 있다. 
 
**렌티큘러(lenticular)기법=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다르게 보이는 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