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택 국어국문학과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어린 사내아이들의 싸움에서 먼저 우는 아이가 지는 것이다. 맞서 싸우다가 누군가 코피가 나고 소매로 문질러 피나는 것을 확인하고는 울음을 터트림으로써 싸움은 종결된다. 그런데 코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불구하고 피로 철갑을 한 채 울지 않고 대드는 경우, 상대가 도리어 당황하여 기겁을 하고 도망친다.
 요즘 많은 청춘들이 외로움과 불안, 고통을 호소한다. 그리고 ‘호소 그 자체’가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홀로 괴로운 울음을 우는 이입니다”라거나 “나는 서러운 유령이다”는 언술, 내가 먼저 울어버리는 방식으로는 그 절망과 불안을 이길 수 없을뿐더러 시적 위의(威儀)를 견지할 수 없다. 먼저 눈물을 보이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은 항복하는 것이다.
 시는 결핍과 외로움, 절망에 대처하는 고투의 양식이기도 하다. 절망 속에서 절망을 피하지 않고 냉정하게 응시하여 그 정체를 파악해서 장악하려는 집요함과 용기가 필요하다. 우선, 시의 주인공으로 ‘나’라는 주체를 적극 내세우지 말고 아껴보자. 형용사나 부사, 감정적 언사로써 내 아픔을 호소하는 방식을 탈피해보자. 냉정한 시선과 집요한 관찰과 적확한 언어로 사태를 붙잡아서 드러내보자.
 임준성은 『소문의 도시』와 『택배의 연대기』 2편을 응모했는데 2편 모두 고른 성취를 보였다. 『소문의 도시』는 도시 변두리 시장의 부란(腐爛)하는 욕망과 생명력 또는 비정함을 익숙하면서도 유연한 언어와 풍경에 담아 설득력 있는 형식을 만들어냈다. 자기 감상에 빠지지 않고 서사 전략을 끝까지 안정된 호흡으로 밀고 나간 것은 나름의 습작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춘문예적 방식이라는 상투성이 없지 않지만, 정진하면 앞날을 기대할 수 있겠다.
 홍성훈의 『파도 앞에서』는 ‘나’를 호소하지 않고 ‘너’를 세우고 돌진하거나 돌파하려는 의지와 힘이 돋보인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 온몸 던진 채/ 반짝거리는 바닷속 소금 알갱이를 세우는 일”이라는 대목은 사랑의 완성이면서 시쓰기 그 자체로도 읽힌다. 비록 그것이 무위한 일이거나 상처가 될지라도 존재를 던지는 용기와 패기가 청년다워 미덥다. 다만 어디선가 들은 듯한 목소리와 산만한 이미지들은 좀 더 다듬어지길 바란다.
 신민주의 『몽당연필』에서는 자기가 아닌 타자와 세상에 보내는 연민의 시선과 태도가 가상하다. 시적 언어와 상상력이 섬세하면서도 부드럽다. 다만 ‘몽당연필’이라는 제재가 어색하고, 『사평역에서』를 연상시키는 이미지, 시의 대상과 어긋나기도 하는 비유 등이 아쉽다.

▲ 정우택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