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는 봄이 옴을 알리고, 올 것 같지 않던 대학생활도 드디어 시작됐다. 사실, 대학생이 되는 것이 기대되기도 했지만 한편 이제는 나의 선택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에 걱정이 앞선다. 누군가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던 말을 어렴풋이 느끼는 요즈음이다. 내가 선택한 학교에서 내가 선택한 강의를 듣고, 각자가 만든 자신의 시간표에 따라 각자의 일정을 짠다. 더 이상 고등학생 때처럼 주어진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고 옆 친구가 하던 숙제와 똑같은 숙제를 하는 일은 없다. 이전에는 선택권이 없었다면 지금은 너무 많은 선택권이 주어진다. 선택하는 것에 익숙지 못한 우리에게 대학생활은 아직까지 벅찬 고민의 행렬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새 내가 계속 고심하는 선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삶의 방향에 대한' 선택이다. 내가 무슨 강의를 듣고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또 어떤 동아리에서 무슨 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보다도 더 중요시 여기는 것은 '그것을 왜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무엇을’이라는 질문이 하나의 '길'만을 제시한다면, ‘왜’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전체적인 '방향'을 정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삶의 방향을 고민하던 중,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볼 기회가 생겼다. 영화에서 주인공 박철민이 불렀던 산울림의 ‘회상’은 지금까지 들었던 회상 중 가장 간절한 회상이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영화 내용이 실화라는 것이었다. 아직도 세상은 강자에겐 너무나 관대하고, 약자에겐 한없이 모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약한 사람들이 이런 세상에 맞서고 있었다. 소송에 이긴들 세상을 떠난 딸은 다시 돌아올 수 없고 산재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보험금 액수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승산도, 기약도 없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좇았다면 6년간의 싸움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 측에서 제시하는 금액이 산재보험금보다 크기 때문에 소송을 중단하고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멍게'로 남지 않게 만든 건, 자신들과 같은 희생자가 또다시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들은 남을 위한 삶이라는 방향을 정했기 때문에 좁은 길이라도 묵묵히 걸어갔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그려 왔던 삶의 방향을 반추했다. 사실 나는 하고 싶은 직업이 있었기 때문에 정시 지원을 할 때에도 관련 학과에 대한 고집이 강했고 그래서 가족들과의 마찰도 잦았다. 하지만 '무엇을', 즉 수단에서 벗어나 목적 '왜'에 더 중점을 두고 생각해보니 꼭 그 직업이 아니더라도 내 목표는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아집을 내려놓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경영학과에 왔다. 어느 길로 가든 간에 내 삶의 나침반이 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다양한 가능성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고등학교 지리 선생님께서는 수능 전 마지막 수업시간에 당신의 대학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에는 두 가지 삶이 있다고 하셨다. 하나는 강자의 편에 서는 삶, 다른 하나는 약자의 편에 서는 삶.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는 수업을 마치셨다. 물론 각자마다 생각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처럼 삶의 종류를 나눠 보고 '나는 어떤 방향의 삶을 살 것인가, 왜 그런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본다면, 방향성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1학년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조하경(글경영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