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신혜연 기자 (shy17@skkuw.com)

지난달 25일, 인사캠은 졸업식에 참석한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금잔디 광장을 가득 메운 졸업생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저는 000 때문에 대학생활이 행복했어요”라는 문구의 빈칸을 채워달라는 것.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졸업을 앞둔 대부분의 성균인들은 빈칸에 주저 없이 ‘동아리’를 넣었다. 다양한 답변을 얻기 위해 질문을 수정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성대에서 즐거웠던 이유’, ‘기억에 남는 활동’, ‘기뻤던 일’ 등, 어떤 말을 붙여도 학교에서 만난 인연들로 뭉친 학내 동아리에 대한 애정이 가장 두드러졌다.
환한 표정으로 자신이 속했던 동아리의 이름을 적어내는 그들을 보면서, 역설적이게도 우울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들이 기억하는 학내 공동체는 과연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스쳐서다. 얼마 전, 대학생 대상 주간지인 ‘대학내일’에서 미래의 대학생활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그곳에 묘사된 10년 뒤 대학은 ‘학생자치의 무덤’이었다. “학보는 읽지 않고, 동아리는 들지 않고, 학생회는 인기가 없다”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냉정한 진단. 결국 학보는 사라지고, 동아리는 학교에서 주도하는 취업 관련 프로그램으로 대체됐으며, 학생회는 교내 복지기관이 역할을 이어받았다. 언론도 자치단체도 중앙자치기구도 없는 대학에서, 학생사회는 그렇게 소멸했다.
학생자치에 대한 학우들의 관심이 나날이 떨어지는 것을 피부로 느껴온 필자로서는 이런 상상이 그리 먼 미래가 아니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최근 새내기새로배움터(이하 새터) 관련 논의도 이런 우려를 더했다. 몇 년 전부터 총새터를 제안해오던 학교는 지난 1월, 안전상의 책임을 이유로 각 단과대 행정실의 역할을 강화한 새터 고지안을 학생대표자들에게 전달했다. 새터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를 단과대 학장으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고지안은 학교 측이 새터 프로그램에 개입함으로써, 학생자치의 산실인 새터의 취지를 무색하게 할 소지가 다분했다.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었지만 학교는 고지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단과대에 지원비를 끊겠다는 식의 강경수를 뒀다. 이를 접한 필자는 학교의 민주적이지 않은 의사결정 방식에 분노했다. 그러나 대다수 학생대표자들은 별다른 거부감조차 없어 보였다. 다행히 협의 끝에 단과대 행정실과 단과대 학생회가 상호 협의하는 식으로 새터 운영에 합의했지만 (본지 1555호 ‘새터, 진통 끝에 합의점 도달해’ 기사 참조), 부산외대 새터 사건을 계기로 ‘술 없는 새터’를 요구하는 등 학교의 새터 개입에 대한 논란의 불씨는 남아있는 상태다.
새터는 새내기라는 새로운 학내 구성원과 함께 그 해 학과 공동체의 틀을 다지는, 학생자치의 시작에 해당하는 행사다. 그러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기에. 단과대 집행부원들은 밤새 보초를 서고, 사전 답사를 떠나는 등 새터 기간 동안 학우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그러나 점차 학생자치에 대한 학우들의 관심이 떠나가고, 결과적으로 학생자치에 대한 고민이 없는 학생회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주체가 된 새터를 고집할 까닭이 있을까? 차라리 저렴하고 안전한 2박 3일 행사를 치르는 주체로는 학교가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학교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꾸려나가는 것에 대한 열망도 학생자치를 지켜나가고 공동체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야지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프로그램을 통제하더라도 안전사고를 대신 책임져주겠다는 학교의 제안은 단과대 입장에서 더없이 고마운 제안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학생자치에 대한 불길한 예측을 해나가면서도 한편으론 졸업생들의 그 환한 표정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번 호 표지사진에 걸린 대학생활의 기대에 부푼 새내기들의 표정이, 졸업생들이 졸업식 날 동기들에게 둘러싸여 짓던 그 표정과 같을 수 있을까? 10년 뒤 학생자치의 방향은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오늘과 내일의 발걸음은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점에 희망을 걸 수밖에. 꽁꽁 얼어가는 학생자치 속, 대학생활의 봄을 맞이한 14학번 새내기들의 대학생활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