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도희 기자 (dhayleykim@skkuw.com)

▲ 영화 ‘시크릿’ 속 한 장면. ⓒ게이봉박두
지난달 26일 오후 7시,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에서 작은 상영회가 열렸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이하 친구사이)에서 주최한 ‘게이봉박두’다. 이는 친구사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전화기로 만든 나의 첫 영화’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보여준 자리로 이날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을 가진 성소수자들이 만든 단편영화 6편이 상영됐다.
‘전화기로 만든 나의 첫 영화’는 친구사이가 마련한 문화강좌 게이컬쳐스쿨에서 성소수자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쉽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다. 영화사 레인보우팩토리와 영화감독 △김조광수 △소준문 △손태겸 △이혁상이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를 통해 성소수자들은 영화·영상제작 기술을 익히고 자기 생각을 영상으로 표현해보는 기회를 얻게 된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티 오브 엔젤’의 현원 감독은 “영화에 온전히 나의 모습을 담았다”며 “그동안 배척을 많이 받아왔는데 영화를 촬영하면서 자신감을 많이 얻게 됐다”는 소감을 전했다.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모습
“사랑해 예진아. 나도 보고 싶어.”
딸의 통화를 우연히 들은 아빠는 딸의 애인이 여자라는 걸 알고 혼란에 빠진다. 가족 간의 커밍아웃을 다룬 이승화 감독의 ‘내 마음속 도청장치’ 중 한 장면이다. 아빠는 딸을 이해하기 위해 동성애, 커밍아웃 관련 책을 열심히 읽는다. 그리고 더는 아빠를 속이지 않겠다며 커밍아웃을 한 딸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영화에는 가족 간의 커밍아웃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이 감독의 바람이 담겨 있다. 이 감독은 “성정체성은 내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커밍아웃하지 않으면 내 삶이 거짓말이 돼버린다”며 “성소수자 자녀를 가진 가족들을 안아줄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머플리 감독의 ‘키스 권하는 사회’도 직장 내에서의 커밍아웃을 다룬 영화다. 실제로 동성애자 직장인들은 이성을 좋아하는 척하거나 밤에 업소를 가는 등 이성애자 행세를 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초반에 신입사원 때는 괜찮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거짓말에 진절머리가 난다.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할 말이 없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능력이 있음에도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한편 김치업 감독은 영화 ‘빌리’를 통해 동성 성매매를 다뤘다. 성매매는 이성애자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지만 게이 사회 속에서의 성매매는 한층 더 자극적이고 비밀스럽게 상품화돼 있다. 사회적으로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실제로 성매매 관련 업체에서 일을 받아 사진 촬영을 한 바 있다. ‘빌리’는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찍은 영화다. 동성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 문제 때문에 성매매를 시작한다. 영화의 주인공 세진도 학자금 대출 상환 등 돈 문제 때문에 성매매 업체에 면접을 보러 간다.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다양하다. 김 감독이 촬영한 사람들은 20대 초반의 대학생부터 40대의 군인까지 가지각색이었다. 김 감독은 “다양한 직업군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 외에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거리로 나선 예비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그린 현원 감독의 ‘시티 오브 엔젤’,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일회성 만남밖에 가질 수 없는 게이들의 일상을 담은 변천 감독의 ‘시크릿’, HIV와 마약 중독으로 인해 파멸로 치달은 연인의 이야기인 강민구 감독의 ‘리퀴드 포이즌’이 이날 관객들과 만났다.
각자의 경험, 생각이 담겨 만들어진 그들의 영화. 이들은 지금껏 접해온 그 어떤 성소수자 관련 콘텐츠보다도 거침없고 솔직했다. 당신도 매스컴에서 흔히 보여주는 것이 아닌, ‘진짜’ 성소수자의 모습에 한 걸음 더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