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신문평 기자 (arch_eliot@skkuw.com)

이것은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한 장면. 길을 잃고 울상을 짓고 있던 앨리스는 체셔 고양이에게 묻는다. “고양이야, 내가 어디로 가면 좋을까?” “넌 어디로 가고 싶은데?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르면 넌 아무 데도 못 가.” 건방지지만, 고양이치고는 꽤 제법인 조언이다. 또 다른 장면. 2013년 12월 12일 호암관 3층에서 한참을 길을 잃은 듯 서성이던 나는 성대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 “입…입사 지원서 가져왔는데요.” “네, 주세요. (2초 정적) 네, 가세요.” “아, 예…….” (문 쾅!) 성대신문사로 향하면서 처음부터 뭔가 대단한 걸 기대했던 나는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뒷맛이 개운치 않음을 느꼈다. 성대신문은 힘든 곳이라 들었다. 신문사 생활 때문에 학점도 연애도 포기했다는 흉흉한 소문들이 도처에서 나를 말렸다. 내 지원서를 받아간 성대신문 기자의 무미건조함도 신경 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이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물음에 마음 한구석이 켕겼다. 성대신문을 읽으며 감탄했던 기사들 같은 글을 내가 과연 쓸 수 있을까? 내가 정말로 진보, 희망, 미래를 부르짖으며 기자정신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아니, 다 필요 없고, 가전공 생활도 LC 생활도 끝나버린 나의 도피처로 성대신문을 정한 건 아닐까? 이런 온갖 물음을 안고 무척 소심해진 채 나는 성대신문의 수습기자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수습기간이 시작된 이후에도 혼란은 계속 됐다. 말은 장황하게 길어만 갔고 내 문건을 읽던 몇몇 트레이너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트레이닝을 거치면서 자의식은 점점 더 비대해져 갔지만, 자신감은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 거창했던, 그 무수했던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르면 어디도 갈 수 없다던 체셔 고양이의 말대로 나는 그대로 멈춰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내 변화를 눈치 채게 된 건 설 연휴 마지막 밤, 월요일 신문사 회의 참석을 위해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으면서다. 굳이 무리하지 말라는 만류에도 심야고속버스표를 끊은 나를 내려다보며 낯선 내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물들었다.’ 온종일 수풀 속에서 놀다 풀물이 스며든 옷소매를 발견한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뭔가 난처하면서도 즐거운 기분. 집에 돌아가면 혼날 걸 알지만 내 삶 한 구석을 장식할, 어쩌면 내 삶을 뒤엎을 지도 모를 유쾌한 기억을 성대신문을 통해 만들고 싶어졌다. 그제서야 내 가슴 가득 흘러넘쳤던 석연찮음이 옅어져 갔다. 해가 변하고 처음 느꼈던 홀가분함이었다. 어쩌면 나의 수습기간은 온통 고민과 허세, 불안정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암중모색(暗中摸索)이라는 표현이 이만큼 어울렸던 때는 없을 것이다. 아직도 분명해진 것은 없다. 성대신문에 몸담으면서 무엇이 내게 이득이 되고 즐거움이 될지 여전히 모른다. 그렇다고 시간낭비라거나 한때의 풍류일 뿐이란 냉소는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에 대한 확신이 서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어느 누구보다도 멋진 출발을 알릴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 여정을 위한 순풍이 이제 막 불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