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빵 아저씨 최원영씨

기자명 조수민 기자 (skkusue@skkuw.com)
▲ 지난 13일 자과캠 후문 ‘계란빵 아저씨’ 최원영 씨가 계란빵을 굽고 있다. / 조수민 기자 skkuwsue@skkuw.com

우리 학교 ‘자과캠 후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제 학우님의 피어오르는 ‘계란빵 식욕’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자과캠 후문에 들어서기 전 길목 입구에 위치한 ‘후문의 지배자’ 계란빵 노점. 계란 특유의 고소한 냄새는 노란 현수막과 어우러져 소리 없이 우리의 식욕을 자극한다. ‘음..?’하고 있는 참이면, 벌써 누군가 말을 꺼낸다. “계란빵 먹자!”

“누가 가르쳐 준 게 아니라 직접 부딪혀 만든 계란빵에는 나만의 자부심이 있어”

우리 학교 자과캠 학우들에게 일명 ‘계란빵 아저씨’로 불리는 그의 이름은 최원영(65) 이다. “그동안 학생들이 와서 이것 저것 물은 적은 많지만, 여지껏 이름을 물은 사람은 없었어. 이름을 이야기 해 준 사람은 학생이 처음이네.” 너무도 당연하게 ‘계란빵 아저씨’로 불렸던 그는 17년째 우리 학교 후문에 자리 잡고 있다. 중소기업에 납품 하는 일을 하던 그는 IMF가 터졌던 1997년 11월 겨울, 유독 찼던 그 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생활이 곤란해졌다. 당시 고등학생, 대학생이던 자식들의 등록금과 학생회비를 낼 돈조차 없었던 그는 계란빵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이 자리엔 좀 넓은 공터가 있어서 떡볶이, 도너츠를 파는 노점들이 많았어. 그래서 나도 여기로 오게 됐지.”
무작정 거리로 나섰지만, 하루 아침에 노점을 운영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그 이유는 계란빵이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오는 돈은 없고, 재료 값에 들어가는 돈만 있던 장사 초반, 거의 굶다시피 했다. 하지만 아내와 연구하며 반죽을 만들었다. 그러다 그만의 ‘비법’ 재료를 찾아 지금의 반죽이 완성됐다. “어느 날 요 맛이 나오더라고. 직접 부딪혀 알아낸 거지.” 계란빵의 화룡점정인 ‘해바라기 씨’도 땅콩, 건포도를 거쳐 나온 노력의 결과물이다. “맛이 없으면 학생들 반응이 바로 와. 건포도는 반응이 아주 안 좋아서 해바라기 씨로 바꿨는데, 10년이 넘도록 아무도 말이 없어. 말이 없는 건 괜찮은 거지!”
‘싸고 맛있는’ 맛집을 찾아 헤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대학생들의 순리인 법. 그만의 비법으로 탄생시킨 계란빵은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94, 95학번부터 내가 만든 이 계란빵을 먹기 시작했어. 그 선배들이 홍보를 잘 해주는 바람에 준비 해 오는 대로 다 팔고 가는거야. 그러니 나도 장사가 재밌어지기 시작한 거지.” 하루 목표치가 ‘그 날 준비량을 다 팔때까지’로 정해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보통 오전 11시 정도에 나와 들어가는 시간은 빠르면 오후 7시, 학생들이 철야를 많이 하는 시험기간에는 새벽 2시까지도 운영한다.
이렇듯 항상 다 팔리는 인기 만점 계란빵도 ‘팔리지 못 할 뻔’한 시절이 있었다. 불과 3년 전 까지만 해도 노점 위치는 후문 바로 앞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학교 경비소장이 찾아와 그에게 장사를 그만 하라고 말했다. “내가 그 자리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했는데, 갑자기 나가라고 하니 정말 당황스러웠지. 시청에 신고를 해 단속까지 나와 버리니,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결국 지금 자리인 골목 길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힘들었지만, 계란빵을 계속 찾아주는 학생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서명운동을 벌일테니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라는 학생도 있었어. 하지만 싸우기 싫어 이 자리로 옮기고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지.”
하지만 이런 그도 항상 그 자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계란빵이라고 해서 ‘계(鷄)’절학기라도 들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계란빵 아저씨인 그도 계란빵 철이 아닌 여름이 되면 ‘피서’를 떠난다. 7월이 되면 그는 강원도 삼척 피서지 해수욕장 부근 고속도로 길목 마을로 갔다.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피서객들에게 찰옥수수를 팔았다. 3년 전부터는 나가지 않고 있지만, 그곳에서도 십여 년 넘게 옥수수를 팔며 많은 추억도 쌓았다. 2003년 여름에 태풍 ‘매미’가 그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을 때, 쌀 두 가마니를 보내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이 정말 고마워하더라고. 그래서 지금도 찾아가면 참 반갑게 잘 해줘. 그 동네에서도 ‘옥수수 아저씨’는 인기가 아주 좋아.”
사람들과 인연을 쌓아가며 즐거운 장사를 하는 그.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망설임 없이 답했다. “계획이라는 게 있겠어? 내 몸이 움직일 때 까지 나는 계속 할 거야. 학생들이 계속 찾아 주니까.” 잠깐만 나오지 않아도 ‘그동안 어디 아프셨냐’고 걱정해주는 학생들, 실수로 잔돈을 더 많이 거슬러 주면 가다 다시 돌아와 주고 가는 학생들. 중년이 돼 가족을 데리고 와 자신의 ‘추억의 빵’을 소개하는 졸업생들까지. 며느리에게도 안 알려주신다던 그 비밀 재료는 계란빵 속에 담긴 17년간의 추억이 아닐까. 계란빵 속 계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사람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내가 다른 데 갈 생각도 안하고 오로지 여기 이 자리에 있어. 성대 학생들이 내 영원한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