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요리사 류시형 인터뷰

기자명 정지윤 기자 (jeeyoonc94@skkuw.com)

▲ 류시형 씨가 김치버스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한영준 기자 han0young@skkuw.com
400일 간 49,960km를 달렸다. 빨간 캠핑카 한 대로 27개국, 130여개 도시를 가로질렀다. ‘김치버스’는 세 명의 요리사가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를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선 프로젝트 여행이다. 그들은 2011년의 첫 김치버스 세계 일주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2013년 하반기, 국내와 일본에서의 김치버스 시즌2를 마무리했다. 현실의 만류에도 그들은 떠났고, 무사히 돌아왔다. 오는 2014년에는 미국과 남미 지역을 여행하는 김치버스 시즌3을 기획하고 있다. 2014년, 우리는 행동하는 대신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꿈꾸는 대신 행동하는 김치버스의 기획자 류시형 씨를 만났다.

류시형을 정의한다면?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라는 닉네임을 10년 넘게 써왔다. 류시형은 요리사일 수도 있고, 작가, 여행가, 혹은 기획자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직업으로 나를 설명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항상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싶은 사람이고, 남들도 나를 낙천주의자로 봐줬으면 한다.

김치버스의 시작을 이야기해 달라
2006년에 첫 해외무전여행을 다녀왔다. 원래 전 세계를 돌아보고 싶었는데, 220일의 시간은 유럽과 러시아를 여행하기에도 벅찼다. 그래서 3년 후 다시 한 번 세계여행을 계획했다. 첫 해외무전여행이 걸어 다니는 경험이었다면, 이번에는 원할 때 어디든 갈 수 있는 자동차를 타고 여행하고 싶었다. 시작은 세계여행을 위한 수단으로의 자동차 세계 일주였는데, 그 자동차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김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실 한국을 바로 나타낼 수 있는 단어가 그리 많지 않다. 네이밍 과정에서 김치와 버스라는 두 단어가 합쳐지니까 재밌더라. ‘김치를 직접 담가서 팔아볼까?’ 혹은 ‘그 나라의 채소로 김치를 만들어볼까?’ 등의 아이디어를 구상하다가 3년이 지났다. 꿈도 조금씩 바뀌고 덧붙여지면서 프로젝트 여행인 지금의 김치버스가 만들어졌다.

김치를 알리고 홍보하는 사람이 된 건데, 원래 애국심이 있는 편인가?
전혀 없다. 김치버스는 알리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라 떠나서 알리게 되는 프로젝트다. 비슷하지만 목적이 다르다. 알리기 위해 떠났다면 기업의 프로모션처럼 상업성을 띠었을 거다. 그와는 다르게 우리는 여행지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내가 알리고 싶은 문화를 전한다. 여행의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 있으니 거부감도 없다. 정부나 기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대규모 프로모션이다. 개인이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좀 더 소규모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거다.

김치버스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차량 구매부터 후원사 선정, 선적비용 문제 등 단 한 가지도 쉬운 게 없었다. 어려움의 연속에서 뭘 느끼고 배웠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든 간에 불가능한 상황은 절대 오지 않더라. 어쨌거나 이미 일어난 일이고, 또 지나가리라는 것을 배웠다. 반복해서 후회할 필요도, 곱씹을 이유도 없었다. 내게만 힘든 일이 오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어려움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낙천적인 사고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수차례의 국내외 무전여행을 하고, <26Euro>와 <400일간의 김치버스 세계일주> 등 여행에 대한 책을 두 번 냈다. 왜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나?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요리사가 꿈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경희대 조리과학과에 진학했다. 하고 싶었기 때문에 요리를 시작했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하고 싶던 일이 해야 하는 일이 돼 버렸다. 싫든 좋든 간에 해야만 하는 일이 되니까 사진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처음 여행을 떠난 이유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함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카메라를 샀더니 돈이 없더라. 그래서 무전여행을 떠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느낀 게 많았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물, 공기, 음식, 자동차…모든 것이 새롭게 와 닿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여행에 푹 빠져 있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만 이럴 게 아니라 세계로 나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해외로 나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니 삶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사람을 만나는 여행을 지속하게 됐다.

어떤 여행이 현명한 여행일까?
자신에게 맞는 여행을 찾는 게 중요하다. 여행을 가고 싶은 동기가 있어야 한다. 내가 만약 자연을 좋아하면 아름다운 여행지를 가야 만족도가 높다. 나의 경우 박물관이나 유적지, 미술관을 선호하지 않는다. 유명한 그림을 봐도 감흥이 없다. 이런 내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나는 사진을 찍고 싶어서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은 하나의 수단이었고, 동기는 멋진 풍경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동기가 충족되는 멋진 장소를 가면 된다. 남들이 미술관에 가자고 해도 그곳에서는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여행에서도 자신만의 색을 찾는 게 중요하다.

꿈을 어떻게 기획하는지 궁금하다.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함께 녹여내나?
꿈은 단번에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김치버스 프로젝트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이뤄진 꿈이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중학교 3학년 때 요리를 꿈꾸고, 경희대 조리과학과에 진학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책을 내고… 이런 식으로 쭉 이어지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이 덧그려지는 거다. 무언가를 찾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가 여태까지 해왔던 것들을 버릴 필요는 없다. 내가 요리를 했기 때문에 김치버스라는 것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던 거다. 만약 요리를 안 했더라면 여행에서 김치버스는 그저 수단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내가 잘하는 것에 좋아하는 것들을 더하고, 그걸 곧 새로운 분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시대다.

‘많은 사람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버리지 못하는 데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 사람들은 버리지 못하는 걸까?
자신이 가진 게 좋아 보이니까 놓지 않으려고 하는 거다. 만약 내가 백만 원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 백만 원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면, 백만 원을 놓아야만 한다. 돈을 써야 여행을 갈 것 아닌가. 내가 돈을 가진 상태로 여행을 갈 수 있다면 그렇게 불공평한 세상이 어디 있을까. 내가 결혼을 하려면 나 혼자만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뭔가를 얻으려면 항상 포기도 있어야 한다.

본인은 무엇을 버렸나?
내 나이에 맞는 역할, 주변 사람들의 기대, 그리고 떠나지 않았다면 잡을 수 있었던 기회까지 모두 버리고서야 떠날 수 있었다. 많이 버렸다. 난 가진 게 없다. 내가 뭘 가졌겠나. 올해 서른두 살인데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남들처럼 돈을 모아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살 수도 없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다음 달에 김치버스 프로젝트로 남미를 간다고는 하지만 후원이 안 돼서 못 갈 수도 있다.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현실적인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현재 나는 만족한다. 꿈을 가질 수 있어서다.

대학생들은 꿈이 무너졌을 때 찾는 방법을 모른다. 성균인에게 꿈에 대해 조언 해준다면?
꿈이 무너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무너질 꿈조차 잘 모르는 것 같다. 사람들은 전례가 없으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기 어렵다’일 수는 있겠지만, ‘할 수 없다’는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안정만을 찾는다. 그것이 실제 안정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그래서 많이 도전해보고, 또 실패해봤으면 좋겠다. 살아가면서 큰 벽에 부딪혔을 때 그걸 어떻게 넘어서야 할지 많이 고민하게 되는데, 실제로 벽을 넘어서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넘어서지 않아도 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른 벽으로 갈 수도 있는 거다. 나이마다 걸맞은 게 있기 마련인데 20대는 ‘나이에 맞는 것’이라는 게 없다. 뭐든 다 할 수 있으니까.

▲ 김치버스의 팀원 조석범, 류시형, 김승민(왼쪽부터). / ⓒ류시형

 
▲ 마운틴 워싱턴에서 내려다본 피츠버그 시의 전경과 김치버스. / ⓒ류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