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송윤재 기자 (songyoonjae92@skkuw.com)

 

▲ 날리니 말라니의 작품 ‘In Search of Vanished Blood’의 한 장면 / 김은솔 기자 eunsol_kim@skkuw.com

 무브 온 아시아(Move on Asia)의 7번째 프로젝트 ‘검열(Censorship)’ 영상전이 열리고 있는 대안공간 루프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음침한 조명 아래 20여 점의 작품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관객을 반긴다.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는 공간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안에는 인도 작가 날리니 말리니의 ‘In Search of Vanished Blood’가 상영 되고 있다. 재갈을 물리고 성폭행을 당한 영상 속 여성은 흰 옷을 입고 그녀의 순결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힌두교’라는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에 굴복해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종교적 규범은 여성이 자기검열을 하게 한다. 영상 마지막에 평화를 상징하는 어지러운 손짓들이 연속해서 등장한다. 검열의 결과가 마치 ‘평화’인 것처럼.
검은 천 밖에는 정면에 영상 한편이 상영된다. 하지만 장면은 과도하게 확대돼 그것이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알기 힘들다. 태국의 작가 솜폿 칫가손퐁세가 태국 정부의 영화 검열에 반대하며 만든 ‘Diseases and a Hundred Year Period’다. 영화 속 의사들의 키스 장면과 스님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장면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자국의 종교를 부정한다는 명목 하에 삭제됐다. 작가는 이에 반항하고자 삭제된 장면을 모아 작품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장면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해 인물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기 어렵게 돼버렸다. 검열에 반대하기 위해 모은 장면들조차 작가의 자기검열로 훼손된 것이다.
어두운 계단을 따라 내려가 지하 전시장에 다다르면 느닷없이 피를 흘리는 남자가 서 있다. 터키 작가 하릴 알틴드레의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 ‘Who Shot the Artist?’다. 총을 맞아 피를 흘리는 데도 아무렇지 않게 전진하는 모습에 놀라 헤드폰을 끼면, 그는 뜬금없이 터키의 예술 동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검열이라는 ‘총’에 의해 고통 받는 터키 예술가.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예술’을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검열에 저항하는 당당함이 엿보인다.
벽면을 따라가면 SNS에서 이뤄지는 자기검열을 다룬 우리나라 작가 김다움의 ‘Still Life: Radiolondres’가 얼핏 보면 정물화처럼 걸려있다. 그러나 이것은 2012년 프랑스 대선 당시 SNS에서 사람들이 나눈 ‘대화’다. 사람들은 대선에 관한 대화를 SNS에서 공개적으로 나누기는 부담스러워, 후보들의 이름을 과일과 꽃으로 암호화했다. 영상은 단순히 정물화가 아니라 그들의 대화를 보여주는 ‘암호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마저도 인간은 자기검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온갖 검열을 보며 무거워진 마음을 이끌고 벽 끝으로 이동하면 지금까지 지나쳐 온 것과는 조금 다른 작품이 걸려있다. 백발의 남자가 숲속 오두막에서 말을 먹이고 때론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기도 한다. 중국 작가 찌앙 팽이의 ‘Sudden’에선 검열 이전,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자의 혹은 타의로 빠져버린 검열의 늪. 그 깊은 수렁에 빠지기전 아마 우리는 이런 모습이었을까.

 

▲ 김다움의 ‘Still Life : Radiplondres’의 한 장면. 특정 후보나 정당을 다른 사물의 이름으로 바꿔부르는 것이 눈길을 끈다. / 김은솔 기자 eunsol_kim@skkuw.com

▲ 찌앙 팽이의 작품 ‘Sudden’의 한 장면 / 김은솔 기자 eunsol_kim@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