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우리 학교 인사캠 정문 앞이 석 달만 있으면 널찍한 쉼터로 단장돼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앓던 이가 쏙 빠진 듯, 오랜만의 시원한 소식에 백 번도 더 환영할 일이다. 그동안 출퇴근할 때마다 초라한 벽돌교문에다 왼쪽의 옹색한 점포 6개 때문에 심사가 울울했던 구성원들이 어디 한둘이었으랴. 오랜 숙원이 풀린 만큼, 이 기회에 600년 전통에 걸맞게 우리 학교 교문을 대대적으로 정비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다면 과연 전통에 걸맞은 교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최소한 벽돌로 쌓은 지금의 교문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수 년 전 홍보팀에서 만든 ‘사진으로 본 成大 600년’ 책자를 보면, 1964년 2월 석조교문을 헐고 5월 목조 궁궐식 교문으로 바뀌었다. ‘大成門’이란 현판을 달고 우리 학교만의 독특한 위용을 뽐내던 교문은 본래 경희궁 남쪽대문인 ‘開陽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1976년 교내 차량 출입이 늘어나고 소방차 등 대형차의 통행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아쉽게도 철거된 것이다. 현재 600주년기념관 지하 1층 박물관 입구에 놓여 있는 몇 개의 주춧돌은 당시 궁궐식 목조 교문의 기둥받침돌이다.
어느 대학이나 첨단건물이든, UI이든, 교문이든, 그 대학의 이미지를 곧장 떠올리게 하는 랜드마크가 있게 마련이다. 대학 이름의 한글 자음을 본떠 교문을 만든 대학이 있는가 하면, 캠퍼스 내 모든 건물과 교문을 동일하게 화강암으로 지어 튼튼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대학도 있다. 또한 어느 대학은 한옥 교문에 청기와까지 얹어 궁궐의 정문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우리 학교 자과캠도 수년 전 첨단학술정보관이 지어져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우리나라 국보 1호가 남대문이고 보물 1호가 동대문이며 경복궁의 정문이 광화문이듯, 정문은 한 기관의 이미지를 상징하기에 손색이 없는 건축물이다.

인사캠의 궁궐식 교문 복원이 시급한 까닭은 여러 가지 있다. 1946년 9월 25일 조선조 유일한 왕립고등교육기관(Royal Academy)인 성균관(成均館)의 정통성(동일한 장소와 동일한 시설에서 꼿꼿한 선비정신을 앞세워 역사를 계승했다)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우리 학교는 개교(開校)가 아닌 건학(建學) 616년을 자랑한다. ‘600주년기념관’이란 이름 자체가 명백한 반증이 아닌가.
하지만 캠퍼스 내에 전통과 어울리는 어떤 건물이나 기념물을 문묘(文廟)를 제외하고는 발견할 수가 없다. 결코 사치하거나 누추하지 않는, 단아(端雅)한 궁궐식 교문을 통하여 600년이 훌쩍 넘은 캠퍼스에 들어선다면 오른쪽 편에 있는 문묘와 함께 전통의 향훈(香薰)을 물씬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학교에서 후학을 기르는 우리나라 제일가는 건축가의 지혜를 빌리면 더욱 좋겠다. 캐치프레이즈 ‘전통과 첨단의 조화’답게 우리 학교의 이미지에 걸맞은 훌륭한 교문을 설계하지 않을까. 교문 복원비용도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는 20만 동문의 촌성(寸誠)을 모아 충당하면 뜻이 더욱 깊을 것이다. 동참하고자 하는 동문들이 줄을 서는 아름다운 모습도 그려본다. 어쩌면 교문 좌우 기둥에 ‘성균’(成均)의 어원이 된 문구 ‘성인재지미취 균풍속지부재’(成人材之未就 均風俗之不齊 :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재를 성취시키고, 고르지 못한 풍속을 가지런하게 한다)를 주련(柱聯)처럼 새겨놓을 수도 있겠다. 제대로 된 교문의 밑그림이 그려져 제대로 된 교문이 우뚝 세워짐으로써 우리 학교의 상징물로 삼는 그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