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고등학생 때는 대학생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과제가 많아도, 시험이 어려워도 왠지 대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에 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저 대학 생활을 즐기고 싶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온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갑작스레 얻은 자유의 쾌감으로 인해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고 가만히 있어도 행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꿈꾸던 대학생활의 모습은 민주적이고, 학구적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도 예상하지 못한 채 나는 여러 ‘현실’들을 마주하게 됐고, 이 현실들은 기쁨에 가려져 나에게 피할 틈도 주지 않고 다가왔다.
내가 마주했던 대학의 현실은 ‘비민주적’이었다. 나는 대학에서만큼은 모든 투표나 선거가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판처럼 되지 않길 바랐다. 그런데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한 후보자가 조금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상대 후보 등록을 거부해 경선을 회피하고, 단독 후보자인 상황에서 투표하라고 음식물을 제공하는 선관위의 행위를 보며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물론, 실수를 한 건 상대 후보이기에 등록을 거부한 것이 불법적인 행위는 아니지만, 자신의 공약에 자신이 있다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 또한, 선거 전체를 관장하는 선관위라는 단체가 단독 출마인 상황에 투표하라고 학생들에게 음식물을 나누어 주는 것이 정당한 행위일까? 나에겐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다음으로 내가 마주했던 대학의 현실은 ‘비학구적’이었다. 대학에서는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며 나의 학문적 깊이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두 학기를 지내고 돌아본 나의 모습은 그저 학점을 위해 공부하는 이른바 ‘학점의 노예’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모든 강의가 다 학점을 위했던 것은 아니다. 정말 배우고 싶었던 공부도 해봤고 좋은 교수님들도 만나 뵐 수 있었다. 하지만 몇몇 강의들은 그저 학점을 위해 듣기 싫지만 들었던 강의였고, 교수님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학점이 잘 나오는 등 본질과 괴리된 강의였다.
이러한 현실들은 내가 피할 시간도 없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저 대학생활의 로망에만 흠뻑 빠져있던 나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진정한 대학생활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자각해야 할 것 같다. 로망에만 빠져있다면 다가오는 현실에 맞설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먼저 변화해야 한다. 아직 사회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대학생의 열정으로 대학생활을 민주적이고, 학구적이게 만들 수 있도록 말이다.

 

 

 

 

 

▲이한새(글경제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