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송윤재 기자 (songyoonjae92@skkuw.com)

 

▲ 최규석 작가가 ‘송곳’의 주인공 이수인에 대해 설명 중이다. / 나다영 기자 gaga0822@skkuw.com

최규석이 ‘노골적’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찌르고자 웹툰 ‘송곳’으로 돌아왔다. ‘송곳’은 외국계 회사 ‘푸르미’에서 일하는 육사출신 이수인 과장의 힘겨운 노동조합 입문기를 그린 만화다. ‘떼인 임금 받아드립니다’ 명함을 돌리는 노동상담소 소장이자 활동가인 구고신도 등장한다. 앞으로 이들은 우리 사회의 가려진 모습을 가감 없이 들춰낸다.

 
송윤재 기자(이하 송)  ‘최규석’이라는 세 글자가 웹툰에 등장하자 많은 독자들이 열광했다. 웹툰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중에서도 ‘네이버’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최규석 작가(이하 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길 바라는 마음에 웹툰을 시작했다. 웹툰 안에서 ‘네이버’와 ‘다음’ 사이에 진영이 갈라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내 만화가 ‘네이버스럽지 않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4주에 4화를 그리는데 12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으려니 힘들다. 1년간 제대로 쉬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부담스럽기도 하다.

 송  트위터를 보면 웹툰에 대한 쓴소리도 있는데. 웹툰의 파급력이 거대한 상황에서 만화계에는 어떤 흐름을 가져왔다고 생각하는가.
 최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 만화계는 망했다는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웹툰이 등장하고 다시 부흥기가 찾아왔다. 요즘엔 우리 만화계가 망했다는 소리는 없지 않은가. 웹툰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운영방식의 문제다. 순위를 매기는 것은 필요하다. 경쟁이 있어야 만화의 질도 향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위가 웹툰이 노출되는 순서에도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 아래에 있는 만화는 재미없는 만화라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웹툰에서조차도 양극화가 발생한다.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던 시절에는 잡지를 사면 거의 다 읽으니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만화가가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그렸다. 그러나 웹툰에서는 단순히 순위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만화를 그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송곳’은 이전 만화와는 달리 ‘노골적’이다. 어떻게 탄생하게 된 작품인가.
 최  사회문제를 비유적으로 말하니 만화의 목적이 잘 전달되지 않더라. 문제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송곳’의 구상은 ‘100℃’작업을 할 때부터 시작됐다.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진 지 20년이 흘렀는데도 그것을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100℃’에서 민주주의를 다룬 사람으로서 ‘말로만 민주주의를 얘기하는데 그치면 되겠느냐’는 나에 대한 불만이 생겼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민주화가 무엇인지 고민하다, 그것이 바로 ‘노동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졌어도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그것을 경험하지 못하면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민주화는 노동조합을 통해 실현된다고 생각해 그 과정을 보여주고자 ‘송곳’을 시작했다.

▲ ⓒ네이버

 송  주인공 ‘이수인’은 육사 출신에 영어에도 능통하고 어린 나이에 과장까지 승진한 인물이다. 이전 작품에서의  평범했던 인물들과는 달리 캐릭터를 이렇게 ‘엄친아’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최  ‘이수인’은 세상이 하라고 하는 규범을 거의 모두 지켜온 ‘착한 사람’이다. 군대에서도 군납비리와 군기잡기에 회의감을 느껴 제대한 규범적 인물이다. 게다가 20대 중후반이기 때문에 아직 사회에 찌들지 않았다. 이런 인물이라면 노동문제에 있어 궁지에 몰리는 장면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수인이 비정규직이었으면 여러모로 공격받았을 것이다. 학벌이나 성격이 약점이 되면 공격하기 쉬워지니까. 노동조합을 다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긴 했지만 사실 비겁한 방법이다. 하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 ⓒ네이버

 송  회사와 노조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듯 보이는 노무사 ‘구고신’도 흥미로운 인물이다.
 최  아직 초반이라 구고신의 역할이 많이 나오진 않지만, 사실 구고신은 노무사이기 보다는 활동가가 맞다. 애초에 모델이 활동가였다. 보통 노무사 자격 없이도 보수를 받지 않고 상담을 해주는 활동가들이 많다. 줄타기를 한다기보다는 회사 측 노무사를 먹여 살리는 것 아닐까. 활동가로서 노조를 만들고 다니는 것이 구고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송  만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노동조합’은 대체 어떤 모습인가.
 최  노동조합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모인 ‘이익’집단이다. 다만 특정 집단의 권익만을 고려한다면 공감을 얻기 힘들다. 80-90년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월급은 거의 같았다. 그러나 2000년대 양극화는 임금격차를 가져와, 중소기업 종사자가 박탈감을 느낄 정도가 됐다. 대중은 대기업 ‘화이트칼라’에게는 아무 말 하지 않으면서 ‘블루칼라’ 정규직 노조에게는 욕을 한다. 공고 나온 사람들이 나보다 연봉이 높으니 기분 나쁜 것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면 배가 아파 ‘귀족노조’라며 공격하는 것이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편견을 깨는 노동조합이 돼야 한다.

 송  ‘이수인’의 노동조합은 어떤 차별성이 있는가? ‘푸르미’는 외국계 회사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최  ‘이수인’은 ‘푸르미’ 매장의 비정규직 사람들이 싫지만 그들을 부당하게 해고하는 것에는 반대하기 때문에 노조에 가입 했다. 매장에서는 똑같이 일하는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정규직이라 노조가입이 되지만 어떤 사람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가입이 되지 않는 상황이 납득되지 않을 것이다. 비정규직들이 이에 반대해 파업을 하더라도, 정규직은 계속 일할 것이기 때문에 파업이 유명무실해진다. 그래서 ‘이수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모두 포용하는 노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외국계 회사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상 우리나라의 사회구성원이 된 것이다. 가령 사회 복지가 잘 돼있는 국가에서 교환교수로 우리나라에 오면 조교가 심부름하는 것을 처음에는 어색해 하지만 나중엔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외국인 바이어들도 우리나라에 오면 룸살롱을 찾는다. 아무리 노동자 권익이 보호되는 사회에서 살았더라도 그렇지 않은 사회의 구성원이 된 이상 충분히 악마가 될 수 있다.

 
 송  웹툰의 주 독자층은 나이가 어린데 어떻게 노동조합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풀어나가고자 했는가.
 최  10대와 20대를 아우를 수 있게 더 쉽게 가보려고 했으나 포기했다. 처음에는 활극으로 만들어보려고 했다. 판타지에서나 등장할 법한 영웅이 공업도시에 나타나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자본가들은 벌벌 떨며 그에 굽히는.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분위기에서 독자들이 거기까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싶어 약한 소재로 방향을 바꿨다. ‘푸르미’의 실제 모델은 ‘까르푸’다. 과거에 이곳에서 파업이 있었는데 언론에는 보도가 되지 않았다. 너무나 평화로운 파업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주목조차 받지 못한 것이다. 바로 이 사건이 ‘약한’ 소재다. 처음에 소재로 선정할 때도 너무 약한 것 같아 고민을 많이 했다. 식칼 들고 뛰어다니면서 피를 좀 보고 조합원들을 차로 치고 그 정도는 해줘야 좀 와 닿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아 현재 그리고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있다.

 송  ‘송곳’이라는 제목이 가지는 의미가 이제 어렴풋하게 잡힌다. ‘송곳’을 통해 대학생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최  ‘이수인’ 같은 사람이 송곳처럼 뚫고 나온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양심과 동료애를 가진 사람은 비상식적인 상황에 부딪히면 뚫고 나올 수밖에 없다. 자기인생이 어찌 될지 모르는데도 항상 수그리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뚫고 나온다. 이때 이들을 하나로 모아주고 도와줄 수 있는 곳이 노동조합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퍼센트고 그중 민주적인 노조는 5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에서 노조를 만들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사람이 등장하고 그들이 주류가 된다면 그곳은 이미 ‘막장’인 사업장이다. 그 정도까지 해야 노조를 만드는 상황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잘 참는다. 물가는 엄청 높고 최저 임금은 턱없이 낮은데도 노조에는 부정적이고. 대학생들이 나중에 노조가 있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의 차이를 이 만화를 통해 알았으면 한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회에서 ‘이수인’ 같은 사람이 곁에 있다면 적어도 욕은 하지 말고 지켜봐 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