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지윤 기자 (jeeyoonc94@skkuw.com)

나는 구구절절한 사랑 노래가 가끔은 무서웠다.
‘사랑해서 미치겠다’거나 ‘지금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랑의 말들에 설레지 않았다. 내가 메마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이 말들이 결코 사랑을 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스토킹은 우리 곁에 있었다. 실제로 얼마 전 고려대에서 헤어진 전 여자친구를 2개월간 따라다니며 교제를 요구한 스토커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피해자는 아무런 도움조차 받지 못한 채 싸늘한 주검이 됐다. 죽은 피해자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입을 열었다면 상황이 달랐을까. 우리 학교에서 스토킹을 겪었던 김현지(가명) 학우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지만, 여전히 홀로 스토킹과 싸워야 했다. 아직도 그녀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너 좋다는데 과민 반응하는 거 아냐?” 상처를 들쑤시는 말은 또 다른 상처가 됐다.
이 기획을 준비하며 내가 느꼈던 것은 분노도, 두려움도 아닌 막막함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가 돼야 귀를 기울였다. 그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때 비로소 관심을 가지더라.
비극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학교는, 법은, 우리는 침묵하고 있었다. 슬프게도 스토킹은 ‘말하나 마나 한 것’, ‘말하고 나면 후회하는 것’, ‘말로는 안 되는 것’이 돼 있었다. 이런 사회에서 스토킹을 다룰 수 있는 기회를 준 김 학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아픈 사람들이 더는 침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