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종윤 기자 (burrowkr@skkuw.com)

 
대학생의 권리와 자유를 속박하는 현재의 학칙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비민주적인 학칙의 유래를 살피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유신정권과 마주하게 된다.

학칙, 국민 자유 억압하던 유신의 잔재
유신 헌법 철폐에 대한 대학생의 요구가 거세지자, 유신정부는 1975년에 *‘학도호국단(이하 호국단)’을 부활시켜 학생 활동을 규제하고자 했다. 호국단이 생기면서 학생회가 해체됐고, 국가는 호국단 학칙을 통해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제한을 뒀다. 교육법을 다년간 연구해 온 방송통신대학교 임재홍 교수는 “민주화 요구와 독재정권 비판에 대해 재갈을 물리는 수단이 바로 학칙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호국단 학칙을 살펴보면, 현재 학칙에 그 잔재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례로 ‘학도호국단에 소속되지 아니한 학생 단체를 조직하고자 할 때는 학도호국단지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교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은 현재 여러 대학에서 학생단체 조직의 사전승인 제도로 존재한다. 또한, ‘학생단체 또는 학생이 교내외 10명 이상의 집회를 하고자 할 때에는 총장 또는 학(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통해 학생들의 자유로운 모임을 가로막았다. 이는 지금의 집회 허가제로 이어졌다. 우리 학교도 학생준수사항 ‘1-마’항 ‘학생이 개인 또는 단체 명의로 △시위 △서명운동 △투표 △여론조사 △확성기 사용 등의 행위를 하고자 할 때는 사전에 승인을 얻어야 한다’를 통해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교권 중심 민주화에 학칙은 뒷전
이후 유신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학칙은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 진행된 민주화가 대학에서는 학문의 표현과 자유를 외치는 교권 중심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학생들이 ‘민주화’라는 거시적인 이슈에 집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작은 이슈인 대학 내 대학생의 권리는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학칙은 △세부세칙 결정에 대한 총장의 절대적 권한 △추상적인 표현 △학생 배타적인 학칙 제·개정 과정의 문제를 안고 있다. 고등교육법 제6조 1항에 따르면 ‘학교의 장은 법령의 범위에서 학교규칙(이하 학칙)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임 교수는 “총장은 법률로 학칙 제정권을 보장받고 있지만, 그것이 위헌 소지가 있는 학칙을 만들 권한까지 부여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고등교육법 제13조 1항에 따르면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하면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징계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교육상 필요하면’이라는 추상적 표현은 총장이 학생을 ‘임의로’ 징계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임 교수는 “학생 징계에 관한 구체적 서술이 고등교육법에 명시될 필요가 있다”며 “학생은 교육권에 상응하는 등록금을 내는 계약의 주체기 때문에 계약 내용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칙을 어느 선까지 준수할지, 선을 넘게 될 경우 받을 징계는 어떤 내용일지에 대해 학생의 의견이 학칙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생,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챙겨야
한편, 이전에는 고등교육법시행령 제4조 5항 ‘보고된 학칙 중 법령에 위반되는 사항이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그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대학에 학칙 개정을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2년 1월, 이명박 정부 대학자율화방안의 하나로 이 조항이 삭제되면서 대학이 학칙 개정에 나설 여지가 사라졌다. 이에 임 교수는 “이제 학생들이 직접 나서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학의 자율성을 옹호하며 학칙을 대학의 고유권한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권은 헌법을 통해 보장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곳곳에서 학칙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학도호국단=1949년 대통령령 제186호로 공포된 ‘대한민국 학도호국단 규정’에 따라 사상 통일과 단체 훈련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됐던 학생자치단체다. 4·19혁명 이후 해체됐지만,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5년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