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환(수학09)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4월 11일 금요일 자연과학캠퍼스 학생회관 1층에 위치한 소강당에서 18주기 황혜인 열사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준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많은 사람이 모였으면 했기에 여기저기 홍보를 하고 다녔다. 그러던 중 같이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한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황혜인 열사에 대해, 추모 문화제에 대해 이야기 해봤다. 여기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5년이나 학교를 다닌 고학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조차 몰랐다는 것이었다.
황혜인 열사는 95년에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로 입학한 우리의 선배님이다. 입학한 다음 해인 96년에는 동아리 연합회 선전국장을 맡고, 행소문학회라는 동아리를 했다. 하지만 4월 16일 학생회관 3층 여학생 화장실에서 분신을 해 세상을 떠났다. 열사가 분신하면서 남긴 유서를 보면 진정한 노동해방을 위해서 남은 사람들은 계속 이어 나가주길 바란다는 생각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고 추모 문화제를 벌이는 것이다.
‘노동해방’ 일단 이 4글자만 보면 무겁고 무서운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가 겪었던 식민지 ‘해방’이라는 사건과 70~80년대에 가장 큰 이슈였던 ‘노동’이라는 단어가 결합이 되면서 이미지가 무거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고민해 보면 그렇게 무게 있는 내용은 아니다. 96년 그 당시에 있었던 사회적 불평등을, 특히 노동자들이 떠안았던 부당한 것들을 해소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노동해방’을 외친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5공화국 이후 첫 문민정부였던 김영삼 정권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노동자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생활이 힘들어지고 반대로 자본가의 배만 차올랐다. 이런 상황에 대구 지하철에서 가스폭발사건이 일어났다. 또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결국에는 대선자금 의혹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민중은 이런 국가와 자본가들에게 분노했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은 노동해방을 외치고 또 외쳐야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학우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래서 황혜인 열사는 관심을 요구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분신을 택한 것이었다.
18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문제점들이 많다. 작게는 학생자치부터 크게는 국정원사건까지 많은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외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학교의 학우들은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저 과제에 치이고 퀴즈에 치이고 시험에 치이며 학교를 다니고 있을 뿐이다.
이번 추모 문화제에 앞서 4월 7일 월요일에는 교양 세미나를 했었다. 그 후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학생회관과 도서관 사이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학우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어서 그런지 학우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분향소 앞에서 붙어있는 글을 읽고, 향을 피워주는 학우들을 보면서 드디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는구나 싶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많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이다. 학우들이,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준다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관심과 참여를 통해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예방할 수도 있다. 바로 황혜인 열사는 이런 것을 바랐을 것이다. 이번 18주기 황혜인 열사 추모 문화제는 끝이 났다. 하지만 이런 문화제를 통해 사람들이 모였고 관심을 가져줬기에 우리의 참여라는 발걸음은 이제 시작될 것이다.

 

 

 

 

▲최철환(수학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