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올봄엔 이상 고온으로 꽃들이 일찍 피었다. 산수유, 매화,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등이 한꺼번에 만발해 곳곳에서 축제 일정을 앞당겼다. 양봉업자들은 갑작스레 부산해진 꿀벌 못지않게 당황하고, 농가들은 유실수가 냉해라도 입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개화(開花)의 쏠림이 초래한 부작용이다.
이런 쏠림(herding) 현상은 특히 우리 사회에 두드러진다. 5년 전엔 ‘녹색 분식(green wash)’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정책이나 민간사업계획에 ‘녹색’이 단골 메뉴였다. 그러더니 어느새 ‘녹색’은 사라지고 ‘창조경제’와 ‘남북통일’이 약방 감초가 됐다.
이처럼 우리는 5년마다 폐기와 신설, ‘간판 바꿔 달기’를 되풀이하면서 파생되는 실속 없는 차별화의 폐해가 심각하다. 수성(守城)이나 경장(更張)보다 창업에 능한 정치인들은 정당 이름과 상징색을 맞바꾸면서까지 ‘남 탓하기’와 ‘보여 주기’에 여념이 없다. 영국 보수당이 300년 이상 오랜 세월 시대정신에 발맞춰 진화를 거듭해 온 역사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대학도 쏠림에서 자유롭지 않다. 1945년 수천 명에 불과했던 대학생 수는 이제 300만 명을 웃돈다. 1965년 28.5%이던 대학진학률은 1990년 33.2%까지 완만하게 상승했으나 이후 급등했다. 2007년 82.8%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70.7%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뜨거운 교육열은 압축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끈 원동력이다. 한때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으로 희화화하기도 했지만, 이만큼 국력이 신장한 것도 교육열 덕분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1949년 이승만정부가 단행한 농지개혁이 대다수 국민의 자녀교육 기반을 마련했고, 우리보다 훨씬 잘 살면서도 농지개혁을 미뤘던 필리핀과 우리의 국력을 반전시킨 일등공신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대학 쏠림 현상은 걱정스럽다. 진학률이 너무 높아서 문제라는 뜻만은 아니다. 적성이나 관심과 무관하게 합격 가능성 위주로 학교와 전공을 선택하고, ‘기회비용’을 따지거나 다른 대안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예 ‘묻지 마’ 진학한 학생도 적지 않다.
대학생이 된 뒤 장래를 설계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도 쏠림이 나타난다. 신분이 보장되거나 규모가 크며 널리 알려진 곳이 선망의 대상이고, 발전 가능성이나 자아실현 기회 등은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다. 어학연수를 비롯한 스팩 쌓기, 취업준비 휴학과 ‘대오족’이 늘어나 입직과 결혼 연령이 늦춰지고 심지어 성형수술까지 유행인 것도 정상은 아니다.
장기적으론 ‘보이지 않는 손’이 쏠림을 조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상으로 복귀하기까지 시행착오와 ‘매몰비용’이 너무 크고, 자칫 막차를 타서 가혹한 결과와 맞닥뜨릴 위험도 있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소신 있게 선택해야 한다. 비록 남이 가지 않는 길이라도 자신이 좋아해야 더 즐겁게 더 멀리 갈 수 있지 않을까. 끝까지 큰 소리로 문을 두드린다면 반드시 그 누군가는 깨우게 될 것이다.
정부와 대학도 분발해야 하겠다. 지금처럼 진학과 취업의 집단선택이 ‘사회적 함정’에 빠진 경우엔 학생 혼자 자기강화적인 관성을 이겨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학과 취업을 ‘쏠리지 않은’ 우등균형에 귀착시키려면, 임계점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고등교육과 평생학습시스템의 과감한 판 갈이가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