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교양 만화가 박시백 인터뷰

기자명 윤나영 기자 (nayoung4798@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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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국보 151호 조선왕조실록(이하 조조록). 한겨레신문에서 시사만화를 연재하던 한 만화가는 조조록을 만화로 그려내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선, 신문사를 그만두고 조조록 독학에 매진했다. 그렇게 스스로 인물들을 연구하고 정리하던 그는 마침내 2003년 7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하 박시백의 조조록) 첫 권 ‘개국’을 출간했다. 콘티부터 그림까지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해낸 그는 작년 7월 마침내 마지막 권 ‘망국’을 끝으로 10년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그의 무모한 도전은 10년 만에 100만 부 판매를 돌파하며 역사 대중화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만화가 박시백 씨를 만나 만화에 대한 철학과 그간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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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기로 처음 만화를 그리게 됐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만화가가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집중적으로 습작을 했다가 입시가 다가오자 자연스레 만화와 멀어졌다. 대학에 입학하자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만화를 통해 효과적으로 실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광주 항쟁 과정을 담은 대자보 만화를 그려 학교 복도 벽에 붙였다. 그리고 총학생회 신문과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신문에 시사만화를 그리는 역할을 맡았다. 만화란 내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세상과 소통하게 해주는 매개라 생각한다.

줄글보다 만화가 주는 특별한 효과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만화는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굉장히 크다.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과 교양을 만화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만화는 그 자체로 자기표현을 하는 고유한 예술이기 때문에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 자체는 △4컷 만화 △애니메이션 △웹툰 등 무궁무진하다. 다행히도 근래에는 웹툰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만화가로 성공해도 괜찮게 살 수 있다는 모델을 보여주는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만화가는 최고로 성공한 사람들 외에는 경제적으로 힘든 길이었다. 여전히 힘든 길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환경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다.

한겨레신문에서 5년 정도 시사만화를 연재했다. 그런데 돌연 신문사를 그만두고 역사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시사만화를 연재하던 시절에는 늘 새로운 표현에 대한 압박감을 받았다. 그러나 정치상황 자체가 동일한 사건이 자주 반복되는 구조다 보니 신선한 표현을 찾기 힘들었다. 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냥 ‘만화가 박시백’으로 평생을 살고 싶었기 때문에 계속 만화를 할 수 있는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극 드라마를 보다 내가 조선사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생각을 했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관련 서적을 찾아보다 조선사의 흥미진진한 내용 전개에 커다란 매력을 느꼈다. 그때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 장르가 완전히 바뀌었다. 일을 시작할 때 두려움은 없었나.
장르가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사만화가 현대 정치를 그린 것이었다면 박시백의 조조록은 사실상 ‘옛날’ 시사만화다. 똑같이 당대 정치사를 그리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영역이 다르다는 생각은 안 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할 당시를 돌이켜 보면 굉장히 무모했다. 어떤 보장도 없어서 두려움은 있었지만, 그 정도로 자신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그려왔던 시사만화도 이야기가 있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난 할 수 있고 또 잘 될 거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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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조록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제일 힘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주요 내용을 정리하는 데에만 100권 이상의 공책이 사용됐다. 내용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한 맥락으로 정리하기가 힘들었다. 한 왕을 마무리하고 다음 왕으로 넘어가면 다시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에 매 왕마다 고통스러운 상황이 반복됐다. 하지만 반복해서 두어 번 읽다 보면 인물들에 대해 조금씩 그려졌고 그들 간의 얼개가 짜였다. 그렇게 공부하는 과정에서 계속 구성을 잡았기 때문에 콘티는 2주 만에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그림 그리고 채색하는 일은 모두 혼자 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 매달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답답했겠지만 크게 스트레스를 느끼진 않았다.

작업 과정에서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작업하기 전 참고 자료들을 미리 살펴보긴 했지만 그것에 구애 받지 않으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기존 교수들이 쓴 논문이 조조록에 기반을 두지 못한 측면들도 많았기 때문에 나중엔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다.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건, 인물들을 주요 포인트로 삼아 전체 그림을 그려갔다. 조조록을 읽다 보니 그 동안 해석이 잘못 됐다든가, 심지어 알려진 사실관계가 잘못 됐다든가 하는 경우를 발견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그야말로 조조록 안에 모든 것이 있다고 판단하고 전문가의 자문을 따로 구하지 않았다.

현대정치와 과거 정치에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인간사이기 때문에 어느 시대나 권력이 갖는 유사성이 있다. 권력을 둘러싼 역사 속 개인 대 개인 또는 당파 간의 투쟁. 이런 것들이 현재 정치 논리 간의 경쟁이나 이합집산, 각 당 간의 싸움과 흡사한 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체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보니 차이점도 분명히 있다. 지금은 대중의 여론이 매우 중요하게 고려된다. 현대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손해가 된다 해도 대중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적당히 반영하는 선에서 활로를 찾는다. 과거에도 정치인들이 백성들과 사대부의 의견을 아예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명백히 드러나는 정도는 아니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역사에 관심이 없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문제다. 아무리 세계화된 세상에 산다고 해도 결국은 대한민국 사람으로 사는 거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과거의 여러 흐름을 통해 형성됐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을 바로 보는 방법이 아닐까. 특히나 조선말에서 지금까지 이어진 근현대사 상황은 오늘의 상황을 만든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래서 이것을 옳게 보는 것이 투표에서 표 하나 행사하는 것에도 영향을 준다. 어떻게 행사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옳은가 고민하게 하기 때문이다. 역사, 특히나 근현대사에 관해서는 대학생들이 꼭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작년 7월 박시백의 조조록이 완간됐다. 10년 동안 한 길만 달려왔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우선 지금은 책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팟캐스트를 진행 중이다. 잘하지 못하는 영역이라 생각해서 하지 않으려 했지만 요즘 매우 흥미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인터뷰 끝나고 청취자들을 초대해서 녹음하는 공개방송이 있는데 공부를 많이 못 해서 큰일이다.(웃음) 첫 방송 이래 누적 청취자가 4만 명에 이를 만큼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신다.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박시백의 조조록을 1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작업하다 보니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다. 아직 따로 습작해 본 것은 없지만 100년 후 우리나라를 그리는 SF물, 3만 년 전 크로마뇽인에서부터 시작하는 역사, 혹은 우리나라의 또 다른 역사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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