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철공소 칠한 예술가의 붓질, '문래 창작촌'
잿빛 철공소 칠한 예술가의 붓질, '문래 창작촌'
  • 김태윤 기자
  • 승인 2014.05.07 14:28
  • 호수 15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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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철강의 자생적 동거, 문래창작촌 스케치

 

                         ▲ 창작촌에서 만난 한 청년의 드로잉 작품들. 창작촌의 모습을 그려낸 것도 있다. / 김은솔 기자 eunsol_kim@skkuw.com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평일 오후의 문래역은 한산했다. 아파트 숲과 작은 공원에는 산책하는 주민들 몇 명만이 전부였다. 이런 곳에 자생적 예술촌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모습.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이, ‘쨍-’. 어디선가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철근 소리와 불꽃 튀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안락한 아파트 단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것일까. 태양 빛에 반사되는 용접봉과 진한 땀 냄새, 그리고 그 사이사이 형형색색의 예술이 칠해지는 문래 58번지. 바로 ‘문래창작촌’이다.

 대양산업, 신신기계, 제일기공, 세현정밀…. 널브러진 용접봉들과 흩어진 목장갑, 그리고 바닥에 튄 쇳밥 자국. 낡은 철공소에 흘러 굳어진 기름때가 철과 함께한 그간의 세월을 담담히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 날, 물감과 붓, 그리고 레코드판을 든 새로운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들은 잿빛의 문래에 그들만의 색깔을 덧입히기 시작했고, 그렇게 조금은 어색한 동거가 시작됐다.
 철공소 사람과 예술가들, 그리고 관광객 몇 명이 어우러져 밥을 먹고 있는 ‘쉼표 말랑’ 식당을 지나자 소박한 공방 하나가 보였다. ‘태영정밀’ 옆에 나란히 붙은 공방. 문래창작촌에 터를 잡은 지 얼마 안 된 새 식구로 아직 이름조차 붙지 않은 곳이다. 똑똑 문을 두드리길 망설이는 찰나, 서글서글한 눈매의 아주머니가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문래동 놀러 오셨어요? 들어와 찬찬히 둘러봐요” 고층의 빌딩 숲,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서울의 어느 곳에서 이토록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던가. 소박한 정원 속에서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문래동의 이야기를 들었다. “경쟁 사회 속에서 너무 갑갑했어요. 그러다 목공과 정원 일을 만나게 됐고, 비로소 자유로워졌어요. 내 손으로 농사지어 수확하는 농부가 된 기분이거든요” 손수 만든 작은 가구들과 화분 속에 뿌리내린 초목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었다. “고층 건물 사이에 숨겨진 전혀 다른 세계죠. 이곳에 들어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바로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때 묵묵히 새 보금자리를 다듬던 아주머니의 아들이 수줍게 입을 뗐다. 대학교에서 조소를 공부하던 청년은 문래동의 매력에 빠져 독학으로 드로잉을 하고 있다. “사물을 관찰하고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무수한 삽화 사이엔 당연히 이곳 문래동을 그린 그림엽서도 있다. 삐걱대는 여닫이문, 길게 늘어진 전깃줄, 아직 채색하지 않은 미완의 삽화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 삶의 현장인 이곳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이곳은 자연스러운 곳이에요. 예술가들과 철공소. 싫든 좋든 다 함께 어우러져 사는 모습 자체가 말이에요” 청년은 문래동을 찾은 기자가 반가웠던지 이내 좁은 골목들 사이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철공소 2층에 숨어 있는 개인 작업실, 그리고 지하에서 매일 밤 울려 퍼지는 기타 소리. 유심히 보지 않으면 작업실인지 알기 어려웠던 곳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몇 발자국 앞에 ‘urban art’라는 게스트 하우스가 보였다. 차를 마시며 스케치를 하고 있는 외국인 두 명과 수줍은 눈인사를 나눴다. 밤이 되면 옥상에선 고기 파티가 열리고, 예술가와 철공소 사람들, 그리고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각자의 이야기를 나눈다.
 게스트 하우스를 뒤로하고 다시 골목 사이로 향했다. ‘특수알곤’이란 생경한 어휘와 용접공의 찌푸린 미간에 지레 겁을 먹었지만 용기 내 말을 걸었다. “불꽃 튀니까 눈 조심하세요. 눈 버려” 새로운 광경에 휘둥그레진 눈동자를 들켰는지 용접공은 날카로운 소음보다 힘센 목소리로 기자를 타일렀다. 문래동에 자리 잡은 순서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자부하는 ‘제일기공’ 아저씨가 하던 일을 멈추고 손님을 맞았다. “뭐 우린 이런 것들이 늘 즐겁죠. 가끔 모여 술도 한잔 하고, 이렇게 어울려 사는 거지. 이건 친한 만화가가 붙여놓은 사진인데 지금 오래돼서 다 바랬구나” 잠깐의 조우를 틈타 땀방울을 닦던 아저씨는 곧 다시 뚱땅거리는 철공소 안으로 들어갔다. 철공소 아저씨가 준 먼지 덮인 책자에선 예술가와 엔지니어들이 함께 나눈 추억의 산물들이 담겨 있었다. 엔지니어는 작업과정에서 쌓인 먼지를 모아 초상화를 만들었고, 예술가들은 철공소 용접을 배워 작품에 응용했다. 폐자재가 놓여있던 쓰레기장은 어느새 화단으로 변모했다.
 대중문화와 하위문화 모두를 끌어안는 디자인스튜디오 ‘안테나’, 다국적 이주민으로 구성된 다문화극장 ‘샐러드 볼’, 재봉틀·캘리그라피·동양화 수업이 준비된 ‘문래예술공방’까지. 철공소 곳곳에 숨어 있는 ‘빨간 모자 소녀’, ‘해안가와 거북이’, ‘스패너의 안식’과 같은 벽화와 조형물을 발견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경인로 변 중앙 차로를 지나던 버스 안, 여느 철강단지와 다르지 않게 무심코 스쳤던 문래 3가 58번지. 그곳은 다르면서도 같은 에너지를 공유하는 그들이 두 발 딛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 그 자체였다. 흙과 쇠의 세계였던 철공소와, 하늘과 영감의 세계였던 예술의 조우. 때론 철근의 무게만큼이나 고뇌하고, 때론 예술이 가진 날개를 타고 하늘로 비상하는 그들. 스스로 모인 ‘자생’적 공간 속엔 으깨진 타일과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의 ‘야생’이 있었다. 함께 어우러져 가는 그들의 인생, 이곳은 ‘생(生)’의 공간 그 자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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