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배공민 기자 (rhdals234@skkuw.com)

 

▲ 일러스트 김은솔 기자 eunsol_kim@skkuw.com

 

▲ 철공소들이 밀집한 골목 사이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 김은솔 기자 eunsol_kim@skkuw.com

▲ 세현정밀 내부의 모습. / 김은솔 기자 eunsol_kim@skkuw.com

▲ 철공소 건물 벽에 그려진 그림이 눈길을 끈다. / 김은솔 기자 eunsol_kim@skkuw.com

 예술인의 반복되는 보금자리 찾기
지나친 상업화와 치솟는 임대료. 2003년 대학로가 문화지구로 지정되며 시작된 거대자본의 유입은 계속해서 대학로 예술인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서울문화재단의 ‘대학로 연극 실태조사’는 그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사결과 대학로의 연극시장 자체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은 상업적인 연극의 증가일 뿐 예술성과 실험성 있는 연극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덧 10여 년 넘게 이어진 대학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연극 지원 정책도 예술인에게는 실효성이 없다. 대부분의 지원이 건물주에게만 돌아가고 실제 대학로 문화를 이끌어가는 예술인에게는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예술인과 영세 극단은 흥행성과 대중성을 좇지 않으면 거대 자본에 힘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맞닥뜨리게 됐다.
 이런 문제는 비단 대학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금은 상업의 중심지가 된 명동과 홍대도 같은 역사를 거쳤다. 60년대 명동의 극단과 수많은 공연장은 상업화에 따른 임대료 상승으로 모두 이전 또는 폐관됐다. 또 80년대 신촌-홍대에 저렴한 임대료와 대학가라는 공간적 이점으로 생겨났던 실험연극과 창작연극 공연장 역시 지금은 모두 쇠퇴했다. 홍대의 경우 겉으로는 젊은이들의 예술 중심지로 우뚝 선 듯 보이지만, 인디음악계와 미술계도 이러한 문제에 당면해있다. 이렇게 예술인의 삶의 터전이 ‘이동-밀집-쇠퇴’의 순환을 계속 하는 이유는 결국 임대료 때문이다. 철새처럼 왔다가 임대료 때문에 밀려난 자본력 없는 예술인. 암울한 순환의 고리를 피해 대학로의 연극인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 예술인들이 유입된 곳 중 하나가 바로 문래동이다.

 평범한 예술인의 피난처 문래창작촌
과거 문래동은 우리나라 철강 산업의 미래를 짊어질 가장 유망한 산업지구 중 하나였다. 일제강점기, 철공소 거리부터 시작해 자연스레 공업의 중심지로 성장한 문래동에는 소규모 기계 관련 업종이 밀집한 철재 상가 단지가 형성됐다. 그러나 그 빛나던 산업 중심지도 단지들이 하나둘씩 외곽으로 밀려나며 쇠퇴하기 시작했다. 골목 사이사이 빈자리는 늘어났고, 철근은 녹슬어갔다. 철강단지의 임대료가 떨어지자, 저렴한 작업공간을 찾던 예술가들이 이 빈 공간을 메우기 시작했다. 철공소가 뿜어내는 열기 사이에서 조그마한 공간을 차지한 그들은 창작열을 불태웠다. 이렇게 홍대, 대학로에서 작업하던 이들이 하나둘 찾아왔고 어느덧 문래동은 현재 100여 개 이상의 작업실과 약 200명 이상의 예술가가 활동하는 거대한 창작단지가 됐다. 처음 시작은 높은 임대료를 피해 철공소 사이에 둥지를 틀던 대학로와 홍대의 예술가였다면 지금은 철공소에서 나오는 장인적인 에너지와 독특한 분위기를 찾아 들어오는 예술가도 많아지고 있다.
이곳은 다른 창작촌과 다르다. 연희문학창작촌이나 금천예술공장과 같은 서울의 대부분 창작촌이 계획적으로 예술가들을 입주시킨 공간이라면, 문래창작촌은 예술가 스스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자생적인 곳이다. 자본의 도움 없이 주민들의 삶의 터전에 스며든 결과, 상업화의 위협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운 공간이 탄생됐다. 문래창작촌이 예술가가 밀집한 집성촌이 됐어도 상업화가 쉽게 진행되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