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신혜연 기자 (shy17@skkuw.com)

 
“지금 광화문 거리는 유령으로 가득하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려는 국민들의 영혼이 유령이 됐다.” 지난 8일 오후, 종로 한복판에서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종대왕상을 점거한 이들은 “우린 누구를 위해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지나. 아이들을 위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표했는데….”라며 국가의 의미를 물었다. 8명의 학생들이 꾸린 이 기습시위는 경찰 투입 3분 만에 진압됐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슬픔의 여파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순진한 학생들을 바다 밑으로 침수시킨 우리 사회 어른들에 대한, 기존 사회 구조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거센 물결로 일렁인다. 하지만 그뿐이다. 지난 9일 대통령 대담을 요구하는 유족들의 행진은 한국방송 사장의 사과로 20여 시간 만에 막을 내렸지만, “이것이 국가인가” 울부짖던 학생들은 알고 있었다. 우리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 없이, ‘사과’는 어린 학생들의 죽음 앞에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수십 년 전 한 학자도 이 같은 어둠의 시대를 건넜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세계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수많은 동료를 잃어야 했다. 한동안 동료들이 나오는 꿈에 시달렸던 그는, 스스로 매우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은 사람은 자신일 수도 있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헛되이 낭비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동료들의 삶을 앗아간 전쟁이 약속해 주리라던, 그 새로운 세계를 이끌어가야 할 책임이 있었다. “내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는 그의 말은 이런 부채감에서 나왔다. 가라앉는 배 안에 있던 사람은 내 동생, 혹은 나 자신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아주 운이 좋았을 뿐이다. 동생들에게 목숨을 빚진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하워드 진은 남은 인생을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에 바쳤다.
하워드 진은 자신의 저서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 “이미 사태가 치명적인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여기서 중립적이라 함은 그 방향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가만히 있으라’는 ‘중립적인’ 명령은 결국 그 치명적인 흐름을 받아들이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었다. 이에 대학생 용혜인 씨는 “정말 가만히 있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침몰하는 배와 다를 바 없는 한국 사회에서, 가만히 있기에 꺼림칙한 청년들을 만나고 싶다”는 그의 제안에 국민들은 행동으로 답했다. 지난달 30일에는 250여 명, 지난 3일에는 400여 명이 침묵 행진에 동참했고, SNS를 통해 전국으로 퍼지면서 △구미 △대구 △대전 △청주 등지에서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좀처럼 사그라질 줄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는 단 하나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약속이 그것이다.
이 5월, 오랜 기간 침묵해온 대학생들은 한국 사회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중립’이라는 원칙으로 군림하던 낡은 질서로 유지되는 한국 사회. 그 오래된 레일 위로 질주하는 기차의 방향을 조금이나마 틀어보고자 하는 균열의 징후가 시민들의 움직임으로 드러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절망할 권리가 없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희망의 움직임은 계속돼야 한다. 우리는 아주 운이 좋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