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지(신방12)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세월호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지하철 2호선에서 열차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승객들은 “잠시 기다려 달라”는 안내를 들었지만 대피방송이 나오기도 전에 스스로 대피를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봤기 때문일까, 시민들은 “기다리라”는 기관사의 말을 신뢰하지 못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번진 불신을 전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는 수백 명을 태운 채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경주 리조트 참사가 발생한 지 겨우 2개월 만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나서던 아이들부터 환갑을 맞아 여행을 떠난 초등학교 동창들까지, 기다리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구조를 기다렸던 사람들은 전 국민의 간절한 염원에도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떠난 자들에 대한 슬픔 위에는 더디기만 했던 구조작업과 탑승자 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사고 대처능력에 대한 분노와 불안이 싹텄다. 헌법이 국가에 부여한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자국민의 보호를 지켜내지 못한 정부에 대한 믿음은 금이 갈 수밖에 없었다.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건 국내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여러 언론사에서 적절한 검토도 없이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가 보도되는 사태조차 기가 막히는데, 정작 중요한 생존 관련 기사보다는 보험료에 대한 얘길 다루고, 생존자에게 친구의 사망소식을 아느냐는 부적절한 질문을 하는 언론의 행태는 국민을 분노케 했다. 수온에 따른 생존 가능성 등 여러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생존 관련 뉴스를 보도하고, 청해진해운과 선장의 실책만 언급하는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해외 언론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현장과는 다르게 과대 보도됐다는 수색 작업에 대한 논란은 국민들에게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불신을 심어줬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월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불신일까, 제대로 된 보도조차 하지 못하는 언론에 대한 실망일까. 사람들은 말한다. 기억하겠노라고, 절대 잊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 슬픔을, 분노를 잊지 않는 것만으로 괜찮을까. 그렇게 해 페리호가 남긴 것은 무엇이었나. 우리가 차디찬 바다 속에서 어른들의 말만 듣고 기다렸을 아이들을 기억한다면, 이제는 슬픔과 분노를 넘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고, 언론이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불안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고 아픔을 나누는 국민들과 차가운 바닷속에서 구해줄 것이라 믿고 기다렸을 아이들에게 표해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이다. 지금 우리 사회 속에 번진 불신은 단기간에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 일은 세월호 참사가 비춘 대한민국의 부실을 하나둘 고쳐나감으로써 비로소 이뤄질 수 있으며, 구해줄 것이라 믿고 기다린 아이들의 신뢰를 저버린 우리 사회가 앞으로 영원히 지고 나가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이명지(신방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