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배공민 기자 (rhdals234@skkuw.com)

▲ 김은솔 기자 eunsol_kim@skkuw.com
 
매주 토요일마다 홍대 프리마켓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 그의 그림은 가만히 앉아 서너 시간 동안 공들여 그려주는 몽마르뜨 화가들의 그림과는 정반대의 스타일이다. ‘10초 완성 10원 초상화’라는 푯말을 들고 10년간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온 장재민 작가. 그는 생산성으로 평가되는 노동의 개념을 확대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노동연구소’라는 이름을 갖게 된 그의 작업실. 여기서 만난 그의 세계는 생각보다 더 깊었다.

▲ 그가 10초 동안 그린 초상화의 가격은 단돈 10원이다. / 김은솔 기자 eunsol_kim@skkuw.com

배공민 기자(이하 배): ‘10초 완성 10원 초상화’는 어떤 의미인가요?
장재민 작가(이하 장): ‘누구나 작품을 가질 수 있다.’라는 패러 다임의 전환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입니다. 10원 초상화는 말 그대로 10원을 받고 10초 만에 완성해주는 초상화예요. 싼 가격으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었어요. 제가 그릴 때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과 최소 금액이 10초와 10원이더라고요. 물질문명에서 희소성 있는 예술은 비싼 값에 팔리고 있어요. 하지만 희소성과 무관하게 많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 또한 예술이에요. 이 작업을 형편 없는 것이라 불러도 저와 그림을 받은 사람들이 느낀 즐거움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배: 10초 만에 완성되는 초상화. 독특한 시도인데 처음 손님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장: 십 년 전 처음 그릴 때부터 손님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줬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재밌게 할 수 있었죠. 독특한 그림을 보고 놀라 우는 아기도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검은 피부의 외국인 아이가 그림을 받자마자 서럽게 울었던 게 생각나요. 처음에는 그림을 아주 자유분방하게 그려서 그랬던 것 같아요. 사람들을 별로 닮게 그리지도 않았고 그때는 정말 빠르게 그리고 대충 그려서 은근히 닮은 게 더 멋지다는 생각을 했어요.

배: 이제 초상화를 그린 지 만 10년이 됐는데, 그동안 바뀐 게 있나요?
장: 더 귀엽게 그려주려고 노력해요. 아기들은 울음으로 마음에 안 든다고 표현하지만, 어른들은 속으로 싫어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림을 받는 사람도 즐거울 수 있도록 그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그려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스타일은 아니라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제가 원하는 방향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향이 조율되겠죠? 아마 평생 연구하고 변화해나갈 것 같아요.

▲ 장 작가가 그린 기자의 얼굴. / 김은솔 기자 eunsol_kim@skkuw.com

배: 10초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실 이름이 약간은 생뚱맞은데요. 이름을 ‘노동연구소’로 붙인 이유가 있다면요?
장: 10초 초상화도 제가 즐거운 것을 찾다가 하게 됐어요. 노동에 대한 제 생각이 그래요. 제가 하는 거의 모든 작업과, 노동은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 기술을 이용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것. 그래서 ‘돈을 버는 것’과는 동떨어졌다고 생각될 수 있어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가 하는 것들이 그저 노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요.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하는 것이 결국 먹고 사는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확신 보여주기 위해서 ‘hardwork lab,’ 한글로 ‘노동연구소’를 작업실 이름으로 짓게 됐죠. ‘내가 하는 일이 당신들이 보기에는 일이 아닌 것 같지만 나에게는 일이다?라는 관점이에요. 실제로도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생활을 유지하고 있어요. 평소 거리에서는 10원을 받지만 기업이나 행사를 갈 때는 달라요. 내가 사람들에게 10원을 받고 초상화를 주는 것은 서비스의 개념이지만, 그들이 나를 초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당한 작가로서의 비용을 지불해야한다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정당한 임금을 받습니다.

배: 장 작가님이 생각하는 노동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장: 본질적인 노동에 대한 정의는 같지만 관점의 차이죠.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하는 활동이 노동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요. 다만 이 노동에 어떤 가치를 두고 하느냐의 차이에요.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해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남들이 그런 틀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내가 정말 즐거워서, 하고 싶어서 하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에요. 그래서 노동백과사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배: 노동백과사전이 뭔가요?
장: 기존에 발행된 노동사전의 확장판을 만드는 일이죠. 기존에 정의된 노동의 이면과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시니컬한 일들, 그리고 노동이 되지 못하는 일들을 적어요. 예를 들어 자원봉사나 학생, 오타쿠의 이야기도 있어요. 오타쿠는 한 가지 분야에 깊게 파고드는 사람이죠. 이런 마니아가 없었다면 그 분야에 대한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나 지식을 확장할 수 없었을 거예요. 어떤 대상에 대한 컨텐츠를 확장시켜나가는 중요한 역할인데 ‘오타쿠’라는 직업은 없어서 사전에 담고 싶어요. 한 줄로 말하면 사회의 통념을 한 꺼풀 벗겨낸 노동 이야기들이 담긴 사전.

▲ 노동을 재해석하는 노동백과사전. / ⓒ장재민 작가 제공

배: 요즘에는 어떤 작업을 주로 하고 계시나요?
장: 요즘엔 우사단 마을 이야기 프로젝트라고 지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영동이라는 친구와 함께 이 동네에 대해 아카이빙을 하는 것이죠. 이 동네에 있는 모든 소재, 예를 들어 사람이나 건물, 역사 이야기 같은 것들을 전부 수집해서 지도안에 표현하는 거예요. 이 동네에 대한 모든 것을 담으려는 욕심으로 수집하고 있어요. 모을 수 있는 건 전부 다.

▲ 이태원 우사단로의 다닥다닥붙은 건물들 사이에 장재민 작가의 아담한 작업실이 있다. / ⓒ장재민 작가 제공

배: 마을의 모습을 담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장: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 70,80년대 옛날 건물의 모습이 남아 있는 마을. 이런 느낌이 좋아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어요. 그런데 이 마을이 재개발 예정지가 돼버렸어요. 지금 이 자리는 공원이 생길 거고 능선을 따라서는 고급빌라가 들어올 거예요. 보존하면 현재의 삶과 잘 융합돼 자산이 될 텐데 한국사회가 우리가 살아온 흔적을 지우는데 굉장히 조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기록할 수 없게 되는 날까지는 계속해서 이 동네의 모습을 기록할 거예요. 보존됐으면 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요.

배: 마을의 모습을 기록한다. 마을의 이야기도 기록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장: 그래서 만든 게 바로 ‘월간우사단’이라는 마을지역 신문이에요. 동네의 부동산 매물 정보부터 드라이크리닝집 강아지 이야기까지 마을의 소소한 소식들을 기록하죠. 지역신문이다 보니 독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보며 굉장히 즐거워해요. 동네사람들과의 유대와 마을의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는 점이 우사단의 존재이유죠.

▲ 마을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월간 우사단. / ⓒ장재민 작가 제공

▲ 우사단 마을 이야기 프로젝트. / ⓒ장재민 작가 제공

배: 이렇게 많은 활동들을 하시는데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있나요?
장: 저의 가장 커다란 주제는 ‘사람’과 ‘사람을 관찰하는 일’이예요. 초상화도 그렇고 동네를 관찰하고 아카이빙 하는 것이나 노동에 대한 생각들까지. 너무 큰 주제라 생각하기엔 자칫 무의미한 주제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는 사물을 관찰할 때도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는가하는 관점에서 풀어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