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송윤재 기자 (songyoonjae92@skkuw.com)

     
 
▲ 성형, 그것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 한영준 기자 han0young@skkuw.com

 

 

 

 

 

 

 

미로 같은 골목을 걷다 보면 ‘성형외과’라는 빨간색 간판이 붙어있는 어두운 공간이 나타난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그곳이 전위예술가 김구림의 ‘사라진 아름다움’이 전시되고 있는 ‘플레이스 막’이다.
더운 날씨와 다르게 차갑고 음산한 공기가 감싼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이 생긴 눈, 코, 입, 귀가 포장돼 열 맞춰 진열장에 놓여있다. 도톰한 입술, 오뚝한 코와 쌍꺼풀 진 큰 눈은 8등신 서양미인의 그것을 보는 것 같다. 옆에는 방금 수술을 마친 듯 수술도구가 널려 있고, 닫혀있는 수술 통을 열면 진열장에서 봤던 눈 코 입이 가득하다. 코의 모양이 선명히 찍힌 석고와 남은 실리콘도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 많이 늘어났지만 결국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어질러진 수술대 위 플라스틱 통에 떠있는 여성의 유두를 보며, 현대인들이 ‘아름다워’지기 위해 가슴을 부풀려 신체를 훼손하는 것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는지를 짐작해 본다.
수술대 뒤편에는 온몸에 붕대를 두른 마네킹이 서 있다. 옆에 걸려있는 깨끗한 의사 가운은 피 묻은 붕대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칭칭 감은 붕대 사이로 오로지 눈만이 정면을 응시한다. 고통스러우면서도 기대에 찬 두 눈에서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이 보인다. 옆에 있는 침상에는 또 다른 마네킹이 붕대를 두르고 누웠다. 붕대 위에는 수술할 부위가 표시돼 있는데 전신이 성형의 대상이다. 고개를 들면 성형 수술을 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림과 사진이 벽에 붙어있다.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훼손한 마네킹들을 보고 있으면 작가의 말이 들리는 것 같다. 본연의 육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이 사라져 버리고 있다고.

▲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으로 수술대에 몸을 바치는 사람들. / 한영준 기자 han0young@skkuw.com

마네킹 옆 스크린 속에는 나체의 여자들이 등장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들은 저마다 다른 포즈로 등장한다. 여자들의 야릇한 모습이 어딘가 어색하다. 얼굴에 또 다른 얼굴이 덧대어 있거나 진열장에서 보았던 눈 코 입이 붙어있다. 어떤 여자는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 자극적인 모습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끄는 여자들은 획일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강조된 신체 부위는 성형으로 잊혀진 원래의 모습이 어땠을지 궁금하게 한다. 자신의 외모를 부정하며 인위적 조작도 마다하지 않는 현대인의 심리. 그 안에 아름다움을 과하게 추구하다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묘사한다.
 스크린을 돌아 나와 두 번째 전시관으로 향한다. 통유리의 투명한 전시관에는 작은 배 한 척이 놓여있다. 문을 여니 습기가 느껴진다. 작은 배는 물로 가득 차있다. 안에는 여성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팔이 뭔가를 움켜쥘 듯 뻗어 있고, 팔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에는 여성의 얼굴이 잠겨 있다. 그 주위에는 모형 뱀이 휘감고 있고, 한 입 베어 먹은 사과가 놓여있다. 마치 성서에 나오는 이브와 선악과를 보는 듯하다. 사과가 획일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낸다면 현대인은 이를 향한 유혹에 못 이겨 결국 사과를 먹고 말았다. 작가는 성형을 통해서라도 아름다움에 다가가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그리고 사라진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이브가 먹은 사과처럼 아름다움은 인간 본연의 욕망이다. / 한영준 기자 han0young@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