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민지(정외11)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4.19혁명 당시, 그리고 5.18 민주 항쟁 때, 한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기며 폭압적인 정권에 희생된 민주화 열사들. 모두 우리가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한 번쯤 봤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우리에게 열사라는 말은 무척이나 낯설고 무겁다. 아마도 1991년의 평범했던 성균관대 학생들에게도 열사라는 말은 무척이나 무거웠을 텐데 그 무거운 말을 나의 동기, 나의 선배, 나의 후배에게 불러야만 했던 우리의 선배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순식간에 열사가 되어버린 프랑스어문학과 김귀정 선배는 노태우 정권의 공안통치 속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다 정권의 토끼몰이식 진압으로 백골단에 맞아 돌아가셨다. 지금의 우리가 지금 세월호 사건에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처럼, 당시 성균관대 학생들도 무척이나 분노하고 슬펐나 보다. 우리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학교축제를 취소한 것처럼, 당시 성균관대 학생들도 축제기간에 돌아가신 김귀정 선배를 추모하기 위해 매년 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축제를 조용히 치렀나 보다.
하지만 김귀정 선배의 죽음이 23년이 지난 지금, 많은 성균인들이 선배를 잊어가는 것처럼, 세월호 사건 또한 20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가는 김귀정 선배의 죽음.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갈 세월호 사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다 해도, 그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마음만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20년 후에 우리가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한다는 것은, 시간에 흐름에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인 슬픔을 다시금 끄집어내어 그들의 죽음에 슬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월호 사건 이후에 엉망이었던 한국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정상화됐는지, 두 번 다시 이런 사고로 많은 사람들의 애꿎은 목숨이 희생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인지 사회적으로 고민하고 다시금 되돌아보는 것이 진정으로 세월호 사고로 돌아가신 많은 시민들을 추모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귀정 선배가 열사가 됐던 날로부터 23년이 지난 지금, 열사를 추모한다는 것은 슬퍼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김귀정 열사가 피로 앞당긴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금 별다른 문제가 없는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두 번 다시 이렇듯 열사가 나오지 않을 수 있는 사회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나는 2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김귀정 열사를 담담하게 추모한다. 그렇기에 나는 얼마 전,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기사였던 이제는 열사가 되어버린 염호석 열사의 죽음을 비통하게 추모한다.

▲채민지(정외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