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길(국문10)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그 날, 모두가 가만히 있었다. 지난달 16일, 다음의 모든 역사를 ‘세월호 이후’로 바꿔버린 믿을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났다. 적어도 나는 한 사회가 이토록 깊은 슬픔과 우울, 수치와 분노, 공포와 폭력, 비밀과 거짓말로 가득한 잔인한 계절을 겪어본 적이 없다. 고백하건대 뉴스 화면 한편에 계속 떠 있는 실종자가 실종자로 남아 있는 게 너무 슬프다고 한 적이 있다. 그때까지 나는 타인의 죽음을 숫자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애도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착한 마음만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이 너무 섬뜩해서 자꾸 손을 떨었다.
지난 18일, 광주 민주화 항쟁이 34주년을 맞이하던 바로 그 날, 노란 리본을 묶은 국화 한 송이와 ‘가만히 있으라’는 피켓을 들고 다시 거리로 나섰던 이들은 행진을 마치기도 전에 경찰 병력에 의해 포위됐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5조로 보호받는 추모행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교통을 방해하고 공공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렬을 불법시위자들로 규정했다. 3시간 동안의 고착과 협박, 토끼몰이식 포위작전으로 그날 행진에 참가했던 100여 명의 시민들은 서울 시내 곳곳의 경찰서로 연행됐다. 경찰은 심지어 고립된 행렬을 지켜보다 끝내 자리를 지키던 시민들과 취재 방해 행위에 정당하게 항의하던 기자들까지 현행범으로 체포하기도 했다.
무엇이 잘못됐던 걸까. 단지 침묵으로 항의했던 이들이 도대체 어떤 무서운 짓을 했기에 100여 명이나 되는 이들이 연행되어야 했을까. 찢어진 피켓과 뜯겨 흩어진 국화잎, 벗겨진 신발과 부서진 안경, 주인 잃은 가방이 뒹구는 광화문광장. 단지 ‘가만히 있지’ 않았을 뿐인데도 경찰은, 정권은, 국가는, 자본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라’는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다. 명령 뒤에는 권력이 있다. 원래 그 권력은 주권을 가진 국민의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주권을 대의 하는 이들에게 맡긴 채 정치에 대한 고민을 잊고 살아가는 동안, 저들은 함부로 ‘가만히 있으라’고 말할 권리를 얻었고, 우리는 우리의 권력을 마치 처음부터 그들이 가진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정권이 이미 사과했다고 말한다. 그들의 사과에는 대책도 약속도 없었다. ‘필요하다면’ 특검하겠다는 말뿐인 사과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정권은 대책을 내놓았다고 말한다.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처의 신설은 기만적인 대책일 뿐이다. 인력과 재원 수급방침은 명시했지만 중앙집권적 기구를 제어할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관료제 병폐의 대안으로 민간전문가 선발을 내세웠지만, 민간재원의 관료화가 가져올 문제점에 대한 언급 또한 없다. 누군가는 정권이 진심이라고 말한다. 진심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대통령의 눈물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 언론, 내각, 국정원, 의료민영화 등에 대해서 대통령은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담화문 이후 질의응답도 없이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원전을 팔기 위해 서둘러 UAE로 떠났다. 진심은 무엇인가. 그건 우리의 진심과 같은가. 그들의 진심이 우리의 진심과 같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사회에 진심을 말해야 할까. 그리고 우리의 진심은 도대체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세월호 사건이 있은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도 모를 일상으로 그저 돌아가고만 있다. 하지만 세월호는 더 이상 가라앉아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무엇도 잃고 싶지도 잊고 싶지 않다.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런데 아직도 손이 자꾸 떨린다.

 

▲김영길(국문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