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프랑스의 경제학자인 토마스 피케티(Thomas Piktty)가 쓴 ‘21세기의 자본’이라는 책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연구들이 많았지만 이 책이 유독 세간의 관심을 끄는 것은 미국 발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를 연속으로 겪은 서구사회가 경제적 불안감에서 나아가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이 지식생산과 맞물린 셈이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을 때 빈부차이가 커진다는 이론으로 ‘모던 마르크스’라는 별명을 얻었다는데 6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많은 식자층이 사보는 이유는 실증적 가치에 있다. 경제학자들이 통상 소득불평등 자료로는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부의 편중현상을 피케티는 지난 250여 년간 포괄적인 소득자료(과세가능 근로소득과 이자 및 배당 등 금융소득) 분석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 자료가 세금과 저소득층에 분배된 다양한 이전소득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은 물론 급격한 누진세와 국제적인 부유세가 처방으로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 책이 중요한 것은 이념 지향성을 넘어서서 상당수의 사회과학자들이 심화하는 부의 편중현상을 심각한 문제로 보게 됐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중소비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부의 편중현상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미국에서 카네기나 록펠러 같은 부자가 탄생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금권시대(guilded age)와 달리 오늘날 최고 부자들은 궁궐과 같은 집을 짓지는 않는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부가 세습화되고 있다고 하는 말을 당장 이미지화시키기는 어렵다. 웬만한 산업화된 국가에서는 먹고사는 문제가 대략적으로는 해결됐고, 기본적 교육과 문화적 향유도 누리고 있다. 아무리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한다고 해도 대개의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자유시장 체제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 또한 국가 내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통계수치는 개인들이 감내하는 삶의 불안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빈부격차의 확대 현상은 많은 사람들의 삶이 절대적 빈곤 상황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갖는 불안의 증대 현상이다. 중산층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거나 젊은 층의 고용불안이 생활불안으로 이어진다거나, 저소득층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내 집 마련이나 노후를 위해 돈 모으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들은 이미 익히 아는 사회상이 돼버렸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러한 사회문제는 한국사회의 경우 산업화 세대의 부모가 어른이 된 자식을 계속 도와줘야 하는 가족관계의 변화로도 이어진다.
이와 같은 중대한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시스템의 변화를 구하려는 관심과 노력들이 여러 부문에서 일어나고 있다. 먼저 정부의 역할이 다시 커지고 있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시장의 문제점을 보완해주길 바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선진산업국의 정부들은 세제나 복지제도 혁신을 통해 소득재분배를 꾀하려는 전통적 방식에서부터 일자리 창출과 창업을 도와줄 혁신모델을 구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의 설립과 경영을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는 좋은 예다. 기업들은 사회적 공헌이나 공유가치 창출과 같은 목표를 세우고 공익적 사회서비스 제공에 기여하려 한다. 소극적인 홍보 차원에서 나아가 지속 가능한 기업의 활동 기반이 사회적 안녕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개인들도 많이 벌거나 적게 벌거나 자선적 활동에 기부하거나 자신의 노동이나 재능을 나누려 한다. 납세자, 생산자, 투자자, 소비자인 개인들이 서로의 삶이 엮여 있다는 연대감을 점차 느끼고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 여러 부문의 노력이 사회경제적 불안을 잠재울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21세기의 자본주의는 건강한 민주주의 보다는 상시적인 정치적 불안을 안고 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