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다영 기자 (gaga0822@skkuw.com)

강영진 교수(국정관리대학원 갈등해결센터장)는 국내 최초 ‘갈등해결학’ 박사이자 갈등해결 전문가다. 강 교수는 얼마 전 서울시 북아현동의 강제 철거 반대로 718일 동안 농성을 했던 이선형 곱창집 부부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정관으로 참여해 ‘구청장의 사과’와 ‘사업자금 대출보장’이 적힌 합의서를 이끌어냈다. 한국 사회의 취약한 갈등해결시스템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현장과 교단에서 활동하는 그에게 갈등해결에 대해 자문했다.

▲ 강영진 교수가 갈등 해결 시스템의 적용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김은솔 기자eunsol_kim@

국내에서 ‘갈등해결학’ 박사 1호라고 들었다. 갈등해결의 전문가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80년대의 한국은 민주화가 정착해 지방자치제도가 완성되고 시민사회나 NGO 등 기구의 탄생으로 독재시절에는 표출될 수 없었던 갈등현상이 보여 졌다. 부산지역과 대구지역이 낙동강 취수보 건설로 충돌하기도 했다고 자치단체장이 쓰레기 매립 소각장을 세우려고 하는데 반대가 심해 쓰레기가 거리에 쌓이는 사태가 있었다. 당시 10년간 기자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갈등현상을 겪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해봤지만 정부의 대책도 없고, 인터뷰를 할 협상전문가나 갈등해결 전문가도 없었다. 협상이 이뤄지긴 했지만 서로 많이 가지려는 협상이었지, 사회 공익적이고 상생적이지 못했다. 이러다간 나라가 위기에 처하겠구나 싶어서 미국으로 가서 전문적인 갈등해결 시스템을 배웠다. 

그렇다면 당시 상황보다 지금의 한국사회의 갈등 해결 구조는 많이 변화됐는가.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갈등이 많이 벌어지고 소모전이라 불필요한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권리의식이 높아졌는데, 그것을 정치,사회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발전하지 못한 구조적인 요인 때문이다. 갈등해결시스템도 별로 정착돼 있지 못하다. 전통적인 방식의 조정, 중재만 있지 복잡한 갈등에 대해 근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국내에서 갈등관리 시스템이 가장 잘 돼 있는 곳이 노동 분쟁 쪽이다. 과거 조정방식을 주로 적용했을 때 성립률이 25%였는데, 현대적인 ‘중조’ 방식을 도입하면서 현재 60%까지 올라왔다. 그 문화를 정착시기 위해 여전히 시스템을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도 갈등에 대한 예방 및 해결시스템의 부재로 초기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들었다.
신속한 위기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기관 내부와 기관 간의 갈등이 있었다. 인명구조가 급선무냐, 책임문제가 먼저냐 가치 판단을 못했다. 기관 간 업무영역을 미리 정해놓고, 구조 활동을 신속하게 해야 한다. 역대 정부는 정책을 추진할 때 고전적인 방식인 ‘DAD’ 를 사용했다. 일방적으로 결정(Decide)하고, 발표(Announce)한 뒤, 반대여론을 방어(Defend)하는 구조다. 이런 일방주의적인 행정 패러다임이 사고 이후에도 문제를 가져왔다. 미국에는 연방재난관리청(FEMA) 안에 갈등해결 관리 전담 부서가 있더라. 갈등해결 전문가들이 재난에 대해 사전대비를 하는 곳이다.

▲ 강영진 교수가 718동안 농성을 했던 이선영 씨의 갈등을 해결했다. ⓒ강영진 제공
갈등해결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중조’ 방식이 사용된 구체적 사례가 있는가.
2005년 참여정부 때 국정원 총리실에서 중조를 기반으로 한 ‘합의형 정책 결정방식’을 도입한 적이 있다. 당시 한국전력과 사업체 간 집에 하나씩 있던 전력량계의 예측수명에 관해 갈등이 있었다. 한국 전력측은 약 500억 원의 교체 비용 절감을 위해 유효기간 연장을 원했고, 생산업체는 공급 물량 때문에 축소를 주장했다. 정부에서 기간 변경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쉽게 건드리지 못하던 민감한 문제였다.
그 때 내가 위원장이 되어 전문적으로 갈등사안을 조사, 분석하고 관련 대표자 14명의 합의를 목적으로 한 위원회를 구성했다. 객관적인 데이터로 분석을 해보니 이론적인 수명이 11.6년이었다. 업계의 경우 불만을 가질 점도 있었으나 합리적인 근거와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졌다. 공공영역에서 사법적 절차가 아닌 합의로 정책결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의미 있는 사례다.

공공문제가 아닌 곳에도 갈등해결 프로그램이 적용될 수 있는가.
요새 주목받는 것으로 ‘또래중조 프로그램’이 있다. 전문적인 중조인이 아닌 일반 학생 혹은 직장인이 갈등해결 훈련을 받은 후 학교나 직장에서 동료 간 다툼을 해결하는 것이다. 상담이 고민거리가 있는 사람이 상담자와 만나 고민을 토로하는 방식이라면, 중조는 갈등 당사자 양측이 중조인과 함께 만나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국내 학교폭력에도 이것이 적용되고 있다. 학생들이 갈등해결 프로그램을 교육 받아 자발적으로 해결을 하는 방법이다. 한국에서 2011년부터 경기도 교육청에서 시범 사업으로 10개의 중?고등학교에서 이 프로그램을 실시했는데 효과가 굉장히 좋았다.

갈등해결의 전문가로서 갈등해결의 방법을 말해달라.
해결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이다. 이선형씨의 문제를 해결할 때도 먼저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의 창업자금 지원제도를 그에게 소개했고, 그가 운영했던 곱창집 가맹 본부에도 찾아가 새 가게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관민갈등에서 벌어진 님비현상과 사적인 갈등 문제도 함께 해결책을 논의하면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갈등해결의 결과는 누구에게나 정의로워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