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장애인 스포츠 ‘보치아’ 대회 스케치

기자명 이종윤 기자 (burrowkr@skkuw.com)

▲ BC2 이정호(울산보치아연맹) 선수가 신중하게 투구하고 있다. 이종윤 기자 burrowkr@skkuw.com

휠체어를 탄 선수가 파란 공을 굴린다. 파란 공은 이내 그의 손을 떠나 상대 선수의 빨간 공을 밀쳐낸 후, 흰 공 옆에 멈춰 선다. 자신의 공이 흰 공 옆에 상대편보다  더 가까이 위치한 것을 확인한 그는 외마디 환호성을 지른다. 관중들도 그의 멋진 플레이에 큰 박수로 화답한다.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스포츠 ‘보치아(Boccia)’의 한 장면이다.

보치아는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스포츠로, 패럴림픽 정식 종목 가운데 하나다. 오는 10월 열리는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도 포함돼 있다. 보치아의 경기 방식은 ‘컬링’과 비슷하다. 두 선수가 각각 파란색과 빨간색 공을 굴려 ‘표적구’인 흰 공에 더 가깝게 붙여야 한다. 경기는 4엔드로 구성되고, 각 선수는 한 엔드에 공 6개를 던질 수 있다. 각 엔드마다 상대보다 흰 공에 가까이 있는 자신의 공 개수만큼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 그렇게 4엔드를 합산해 점수가 높은 사람이 승리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는 보치아 강국이다. 보치아가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서울패럴림픽 때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따냈다. 국내에 보치아가 소개된 시기가 1987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결과다. 이후 우리나라는 런던패럴림픽까지 7연속으로 금메달 1개 이상씩을 획득했다. 그 기간 수확한 메달은 총 17개(금8, 은4, 동5)나 된다. 이외에도 국내 보치아 선수들은 여러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최승균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보치아담당관은 “국내에서 꾸준히 대회가 열려 선수들 간 경쟁이 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6일부터 3일간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2014 오텍그룹배 전국보치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국내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잘하다 보니 치열하고 높은 수준의 경기가 예상됐다. 대회는 △8강전 △4강전 △결승전으로 구성된 마지막 날을 맞아 그 열기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 BC3 선수들이 사용하는 보조기구. ⓒgmarket
보치아 선수는 장애등급에 따라 △BC1 △BC2 △BC3 △BC4 종목에 나뉘어 출전한다. BC1과 BC3에 속한 선수는 보조자가 필요하다. BC1 선수의 경우 스스로 공을 굴리는 것은 가능하므로 보조자는 휠체어를 밀어주고 공을 집어주는 역할만 한다. 이에 반해 BC3 선수는 공을 던지기 위해 보조기구를 사용해야 한다. 선수 혼자 보조기구를 사용할 수 없어서 보조자가 보조기구 조정을 도와준다. 이처럼 보조자가 플레이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기에 BC3 종목의 경우 올림픽에서 선수와 보조자에게 공동으로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이에 비해 BC2 선수들은 그보다 낮은 등급의 장애를 가진 선수들로 보조자 없이 혼자서 플레이할 수 있다. BC4의 경우 뇌성마비 장애인에 준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지만, 혼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운동성 장애인들이 속하게 된다.
이번 대회에서는 4가지 개인종목이 모두 열렸다. 주목할 만한 대결은 4강전에서 성사됐다. BC3 세계랭킹 1위 정호원(속초시장애인체육회) 선수와 최예진(충남도청) 선수가 맞붙은 것이다. 두 선수는 런던패럴림픽 결승전에서도 만난 바 있다. 당시에는 최 선수가 승리를 거두면서 BC3 종목 최초의 여성 금메달리스트 탄생을 알렸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지난 대회의 패배를 설욕하듯 정 선수는 초반부터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점수 차를 벌려 나갔다. 최 선수는 런던패럴림픽 이후 1년여의 공백기를 실감하는 듯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8대0의 점수로 정 선수가 가볍게 결승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선수단은 점심시간을 가진 후 오후 2시에 결승전에 돌입했다. 4종목의 결승전이 동시에 진행됐다. BC3 결승전에서는 연이어 흥미로운 대결이 펼쳐졌다. 정 선수의 상대로 세계랭킹 2위 김한수(경기도보치아연맹) 선수가 올라온 것이다. 정 선수는 준결승전의 여세를 몰아 1엔드를 4대0의 제법 큰 점수 차로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2엔드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김 선수가 시종일관 흰 공 옆에 자신의 빨간 공을 모아놓으며 게임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정 선수가 굴린 마지막 파란 공이 빨간 공 사이를 뚫고 지나가더니 표적구를 쳐 파란 공들 가까이 밀어내며 3점을 획득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마법 같은 장면에 관중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7대0. 그러나 쉽게 물러날 김 선수가 아니었다. 3, 4엔드를 연이어 가져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초반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정 선수가 7대4로 우승을 차지했다. 정 선수는 “지난번 이 대회에 처음 출전했을 때는 떨려서 우승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좋은 성적을 거둬 만족스럽다”며 기쁜 마음을 전했다.
다른 종목에서도 재미있는 경기가 진행됐다. BC4 김성규(충남도청) 선수는 0대4로 뒤지고 있던 3엔드에서 자신의 공으로 표적구를 둘러싸고 있던 상대의 공들을 모조리 밀쳐내며 3대4로 따라붙었다. 이어진 4엔드에서도 1점을 획득한 그는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뒷심이 부족했다. 연장전으로 치러진 마지막 5엔드에서 결국 장성육(경기도보치아연맹) 선수에게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장 선수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이외에 BC1에서는 정성준(신애재활원) 선수가 BC2에서는 손정민(경기도보치아연맹) 선수가 각각 5대3, 4대3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선수들은 공을 던지기 위한 자세를 잡기 위해 온몸을 뒤틀어야 했고, 보조자에게 보조기구 조정 지시를 전달하기 위해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경기가 끝나고는 팔이 부어올라 아이스크림으로 급하게 냉찜질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그렇게 1구마다 혼신을 다했다. 굴러간 공이 멈춰 섰을 때, 그들은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그들이 굴린 작은 공 하나. 거기에 담긴 그들의 어마어마한 노력은 배에 달하는 보람과 행복으로 되돌아 굴러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