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윤 기자 (kimi3811@skkuw.com)

 

 무대에서 객석으로 울려 퍼지는 느리고 익숙한 가야금 선율. 그 안의 한국적 정서가 서서히 객석으로 스며든다. 바로 ‘퓨전국악’의 형식 안에 ‘한국인의 서정’을 담은 음악 그룹 ‘공명’의 콘서트 ‘통해야’다. 백발의 외국 노인은 맑고 신비한 가야금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 빠름과 느림을 반복하는 이 곡은 ‘달의 여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달아달아’라는 전래동요를 25현 가야금으로 편곡해 재구성한 곡이다. 청아한 울림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자 도착한 곳은 대자연의 한 복판. 맑고도 은근한 우리 고유의 정서에 취할 무렵 어렸을 적 듣던 ‘자장가’ 선율이 이어진다. 곧 관객은 기억 너머 할머니의 무릎을 베곤 꿈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시작된 지난 향수를 붙잡기 위한 걸음마.
 ‘달의 여신’이 다소 정적인 곡이었다면 이어지는 ‘해바라기’는 보다 경쾌하고 가볍게 흐른다. 소금과 기타의 어색하지만 제법 잘 어울리는 조우. 가혼, 잼베, 에그 쉐이크의 흥겨운 박자에 신난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며 손뼉을 친다. 어느새 공연장은 울타리 없이 광활한 해바라기밭으로 변모한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해바라기 사이, 타악기들이 모여 태동시킨 가벼운 음표가 떠다닌다. 떠도는 음표를 잡으려 풀밭을 노니는 관객의 사뿐한 걸음걸음. 곡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연주자는 탬버린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린다.
 가볍고 경쾌한 타악기들의 만남은 흥과 활기를 입고 본격적인 ‘놀이’로 변모한다. 네 명의 멤버들은 각자 다른 놀잇감을 가져온다. 고깔모자를 쓰고 나온 어수룩한 멤버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이어서 그는 공구를 꺼내 긴 지팡이에 구멍을 뚫는다. 익살맞은 표정에 휘파람 소리까지 더해지자 객석은 어느새 웃음바다로 변한다. 갓 뚫은 구멍에 한 떨기 꽃을 꽂는 사내의 모습.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이는 광대의 모습이 중첩된다. 취구를 입에 대고 숨을 불어넣자, 지팡이에 불과했던 긴 막대는 국악기 ‘소금’으로 변신한다. 계속되는 날숨과 함께 탄생하는 화려한 음빛깔과 풍부한 장식음. 한 멤버가 커다란 생수통을 두드리자 옆에 있던 다른 멤버는 가지고 온 얇고 둥그런 쟁반을 흔든다. 중간중간 삽입되는 ‘얼쑤’ 하는 신명 나는 추임새. 네 명의 사내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 곡은 북청사자놀이의 선율을 모티브로 한 ‘흥’이다. 21세기 서울의 한 복판은 어느새 17세기 한양의 저잣거리가 되고, 4명의 광대가 ‘한바탕 놂’을 펼친다. 북청사자놀이가 극의 풍자적 측면보다는 흥겨움을 위주로 했던 것처럼, ‘흥’ 역시 공연장을 찾은 관객이 온갖 상념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선물의 곡이다. 마음을 연 관객은 이제 무대 위로 올라서길 서슴지 않는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가 더 ‘무아지경’으로 놀 수 있는지를 겨룬다. 삐뚤빼뚤한 춤사위와 어색한 박자. 관객은 그간 숨겨왔던 유희적 본능을 가감 없이 벗겨낸다.
흥에 겨워 카카오톡의 푸시알림도, 자잘한 일상의 굴레도 잊어 갈 쯤 공연은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른다. 마지막 곡은 이번 콘서트의 타이틀인 ‘통해야’. 소금, 태평소, 장구, 북 같은 전통악기와 건반, 바이올린이 만나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거기에 공명이 직접 고안한 대나무 타악기인 ‘공명’까지. 밝고 힘찬 선율이 가슴 속을 채우던 모든 응어리를 녹여낸다. 도심의 탁한 공기가 악기 ‘공명’을 통과하자 대나무 숲의 상쾌한 공기로 정화되는 놀라운 광경. 장구와 북의 힘찬 두드림에 맞춰 객석의 아이들이 발을 구른다. 평범한 영화관이었다면 금세 인상을 찌푸렸을 법도 한데, 모두가 ‘통(通)’ 하였는지 인자한 미소가 지어진다.
 ‘한국적 정서의 스며듦’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닌, 잠시 잊고 있던 것으로의 회귀다. 콘서트 ‘통해야’를 통해 모두가 어우러져 소통하는 길을 찾고자 한 월드뮤직 그룹 ‘공명’. 스크린에는 광대의 흐르는 눈물을 기억해 달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그들은 관객에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더라도, 다른 슬픔에 잠겨도 이 공연을 통해 잠시라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그들의 음악 속 서정은 올해 크고 작은 슬픔에 잠겨있는 이 땅에 진동과 울림을 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