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문학에는 주제가 필요하다
한국 인문학에는 주제가 필요하다
  • 나다영 기자
  • 승인 2014.06.02 23:19
  • 호수 15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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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대학구조개혁과 관련한 정책을 발표하면서 교수사회에서도 인문학의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인문학총연합회는 지난달 9일 ‘평가 및 지원 제도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도 한국만의 독자적 지식생산 기반이 없다는 주장과 교수 업적 평가제도에 대해 대안이 제시됐다.
우리 학교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두 교수도 인문학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문제로 ‘평가제도 개선’을 주장했다. 

모국어 인문학이 없는 ‘얼빠진 인문학’
철학과 이종관 교수는 한국의 인문학을 ‘얼빠진 인문학’이라고 표현했다. 언어철학에 따르면 언어에서 생각이 태어나는 것인데 한국에는 ‘모국어로 된 인문학’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는 고전적인 것을 그대로 한국학으로 생각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서 “우리의 인문학은 전부 외국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방 이전에는 한자로 인문학을 했고, 해방 이후에는 서구 인문학을 수용했다. 한국의 인문학은 아직 대학에서도 역사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모국어와 인문학이 서로 발전하는 양상은 과거 인문학의 발전역사에서 드러난다. 이 교수는 “고대 문화 융성기 그리스어로만 인문학이 이뤄지던 시절에 라틴어는 학문을 할 수 없는 저급한 언어에 불과했다”며 “하지만 로마제국이 그리스 인문학을 라틴어로 수용한 이후 독보적인 학문언어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라틴어로 이뤄지던 인문학은 유럽 각국의 모국어로 수용됐고, 그 결과 불어와 독일어, 영어는 고급 학술문화어로 발전했다.
이 교수는 번역을 통한 인문학의 모국화를 긍정적으로 본다. 그 과정에서 각 국 문화에 내재된 문화적 창의성이 융합돼 새롭고 다양한 인문학이 창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0년 동안 외국의 인문학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해석하려는 활동은 국내 인문학의 토양이 됐다. 하지만 이 교수는 “국제화라는 목표아래 시행된 정부의 대학 평가제도는 이러한 연구활동마저 제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학교육개혁과 인문학 융성을 말하기 전에 평가제도 시스템이 먼저 개선되어야
국문과 천정환 교수는 글쓰기의 양태 변화와 연구 주제를 통해 연구 문화를 보여줬다. 한국연구재단의 <2013년 대학연구활동 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4년 전임교원의 논문실적은 2008년 5만 293건에서 2012년 6만 6745건으로 32.7%증가했다. 반면 저술실적은 6만 567건으로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천 교수는 “이는 연구자들의 증대된 연구력이 주로 등재지 논문 위주의 활동이란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는 도서를 기반으로 한 대학 바깥의 인문학 열풍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학문, 대학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한 원인을 보여준다. 또한 2012년 국제전문 학술지 게재수는 전년에 비해 16.6%증가했다. 천 교수는 “A&HCI, SSCI 등 미국 민간 학술정보 기업이 선정한 등재지에 기고한 논문에 높은 평가점수가 매겨지며, 그런 논문과 한국 등재지 논문의 평가 점수비율은 약 3:1”이라며 “교수들의 승진과 임용기준에도 큰 영향을 미쳐 많은 학자들에게 영어 논문 쓰기가 최고의 학문 활동이 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주제의식 없는 한국 인문학의 방향
영어로 이뤄지는 인문학과 외국저널을 최우선 기준으로 하는 논문 쓰기의 양상은 한국만의 주제의식을 갖지 못하게 한다. 이 교수는 “인문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한국에 맞는 주제의식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현재의 평가제도는 주제의식 자체가 영미권에 종속돼 있어 학생들이 읽기도 어렵고 주제의식에 동감하기도 어려운 상태이다”고 말했다. 천 교수 또한 “세계의 근본적인 문제나 인간적 삶의 문제와 유리된 채 논문만을 생산하며 인문학은 갈 길을 잃은 것”이며 그런 상태를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잉문’학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새로운 평가제도와 연구문화를 정착해 한국 인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제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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