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시인, 조우리 소설가 대담

기자명 김태윤 기자 (kimi3811@skkuw.com)

“당신은 매우 젊고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기에 저는 최대한 강하게 당신에게 간청하는 바입니다. 부디 당신의 마음에서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을 인내하고 질문들 그 자체를 마치 걸어 잠근 방들처럼, 마치 완전히 외국어로 저술된 책처럼 사랑하려 노력하십시오.” 시인으로서의 길을 고민하고 있는 젊은이에게 전하는 독일의 시인 릴케의 조언이다. 20대라는 젊은 나이, 문인의 길을 걷는 것은 타들어 가는 담배꽁초만큼이나 외롭고 고독하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보장할 수 없는 집필 활동에 선뜻 발을 들여놓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와 소설에 자신의 세계와 감정을 오롯이, 그리고 묵묵히 담아내는 청춘이 있다. 초여름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황인찬(27세) 시인과 제10회 ‘대산대학문학상’으로 이름을 알린 조우리(28세) 소설가를 만나봤다.

▲ 소설가 조우리(왼쪽)씨와 시인 황인찬(오른쪽)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정현웅 수습기자 webmaster@skkuw.com

대학 시절 어떻게 글을 썼는가.
황인찬 시인 (이하 황): 원래는 소설 쓰는 것이 좋아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그런데 *합평 수업에서 혹평을 듣고 나니 소설은 안 되겠더라. 정체성을 고민하던 중 우연히 오르한 파묵의 ‘눈’이란 소설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시로 옮겼다. 그때부터 시를 쓰게 됐고, ‘작인’이라는 시 창작 동아리에 들어갔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시에 대한 무수한 생각을 긁어모아 끊임없이 이야기를 굴려가는 곳이었다. 학과에 들어오는 문예지도 눈여겨봤다. 각종 평론, 시인들의 발표를 보며 ‘문단이 이렇게 굴러가는구나’를 느꼈다.
조우리 소설가 (이하 조): 지금은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을 가리는 것이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예전엔 정해진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문예창작과로 진학하지 않고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했던 이유도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을 가리는 이론적인 부분이 궁금해서였다. 백일장에 나가면 심사위원들이 평을 해준다. “네 소설은 이런 점에서 나빠”. 그런데 나는 그 전문적인 평가를 알아듣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그들의 평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현대문학회’의 비평 분과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문예 사조와 최신 평론을 접했다.

보통 글 쓰는 젊은 친구들은 문단에 어떻게 진출하나. 데뷔 과정을 듣고 싶다.
황: 대부분 신춘문예나 문예지에서 하는 신인 공모전을 통해 데뷔한다. 학부 시절에는 공모전에 작품을 내고 떨어지고의 연속이었다. 될 것 같아서 낸 다기보다는 ‘마감 날짜’가 있어서 냈다. 마감이 없으면 문장 하나하나 마음에 들 때까지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내가 더 잘 쓸 줄 알고 참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마감이 정해져 있으면 글을 완성하기 위해 참고 견디게 된다. 군대를 더는 미루지 못할 때쯤 문예지 ‘현대문학’에 당선이 됐다.
조: 나도 많이 내고 떨어지길 반복했다. 일 년에 10개씩은 기본적으로 떨어졌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말도 안 되는 작품도 많이 낸 것 같다. ‘이거 안 되면 취직이다’는 각오로 ‘대산대학문학상’에 5번째로 도전했는데 당선됐다.

다소 어린 나이에 등단했다. ‘최연소’, ‘젊은 문인’이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진 않은가.
조: 사람들에게 시행착오를 많이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게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저번보다 더 나은 소설을 써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황: 젊은 시절의 번뜩임은 시작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젊음에 주목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가진 것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요절한 시인보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을 괴롭혀 집필 활동을 하는 작가가 좋다. 이승훈 시인, 오에 겐자부로 같은.

글에 대한 영감은 어떻게 얻는가. 평소 집필 활동은 어디서 하는지 궁금하다.
황: 정말 사소한 디테일을 조금씩 쟁여 둔다. 순간순간 메모해 둔 것들이 쌓이고 쌓여 마감일이 다가오면 알아서 달라붙는다. 백과사전의 문장을 활용하기도 한다. 문장이 중립적이고,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붙어 있지 않아 좋더라. 체리, 개구리를 소재로 한 시도 백과사전의 문장을 가져다 썼다.
조: 글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싸우는 연인의 모습. 그들 사이 미묘한 거리를 보곤 ‘저들이 왜 싸웠을까’ 하는 궁금증을 품어 본다. 그 한 장면으로 시작해 눈덩이 굴리듯이 이야기를 굴려 가다 보면 한 편의 글이 만들어지더라. 
황: 창작촌에 입주하기 전에는 24시간 카페에서 온종일 글을 썼다. 부모님이 공간을 마련해주셨지만 이상하게 집에서는 글이 안 써지더라.
조: 나도 카페 전전할 때 진짜 지쳤다. 집에서는 동생과 방을 같이 썼는데, 독수리 타자로 1200타를 치는데 얼마나 시끄럽겠는가. 창작촌에서는 새벽에도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으니까 좋다.

생활비에 대한 부담이 많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작가의 길에 대한 결심이 확고한 이유는 무엇인가.
황: 재물욕 보다는 명예욕 때문이다. 어차피 이걸로 돈 못 벌 것은 누구든지 안다. 목표는 문학사에 내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조: 작년에는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일했는데, 올해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필 활동을 병행하는 중이다. 나는 문학사까진 모르겠고 한 사람의 개인사에 기록되고 싶다. 좋아하는 작가들 이름을 댈 때 내 이름을 대는 사람이 있는 것, 아무리 이사를 다녀도 내 책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글을 쓰려는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 쓰고 싶을 때까지 쓰고, 보여줘라. 쓰기 싫은 혹은 잘 쓰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하지 마라. 좋아서 하는 일에 너무 매달려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황: 재능이라는 것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천재도 없고 당신도 천재가 아니다.

◆합평=여러 사람이 모여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비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