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호 - 조경학과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어쩌다 스위스 같은 데라도 잠시 갔다 올까 그러면, 프랑스도 가겠네? 바로 그 옆 오스트리아는? 로마는 어때? 뭐 이러고들 그런다. 한 두 나라만 가지고는 유럽은 아예 간걸로 쳐주지 않는다. 그만큼 여행지로서 유럽은 남 눈치도 좀 봐야하는 약간 골치 아픈 동네다. 다른 사람들 눈치 안보고, 그러면서도 뭔가 그럴 듯하게 포장된 그런 유럽여행 잘 가는 방법은 좀 없나? “정원투어” 같은 거라면 괜찮을 듯도 싶은데, 다들 좀 생소해할지도 몰라.
우리는 그간 정원과 그리 친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원 그러면 좀 생소하다. 혹은 호화주택에서나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이제 좀 잘 살게 되었다고 호사스럽게도 정원 타령 같은걸 해도 괜찮은 건가? 먹고 살기 힘들고, 아니 주말 나들이도 제대로 못 하는데, 가까운 일본도 아니고 유럽을 가라고?
- 그럼 호사스럽지 않게, 돈도 시간도 크게 들지 않아도 된다면, 그러면 기꺼이 나하고 한 배 탈 거유?
작년 추석연휴를 코앞에 두고 모 일간지에서 문화계의 명사 다섯 으로부터 연휴동안 읽으면 좋을 책을 한권씩 추천을 받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어느 분이 정원을 거닐 줄 알아야 삶이 우아해진다는 추천의 말과 함께 정원 책을 하나 소개하였다. 이제 우리도 좀 여유롭게 살자는 건데, 그러자면 이제부터 정원에 관심을 돌려봐야 할 게 아닌가, 뭐 그런 이야기였다. “유럽이 폼 나는 이유는 오래된 왕궁이나 성 때문이 아니라 정원 때문이다. 나라마다 독특하게 발전시켜온 정원의 전통이 있다. 이 책 <유럽, 정원을 거닐다>는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정원의 대표적인 곳을 소개한다. 각 나라에서 공부한 한국의 전문가들이 정원을 읽는 법을 소개한다. 정원을 읽는 법을 배우니 각 나라의 차이가 제대로 읽힌다.” (김정운, “다들 제발 좀 우아하게 삽시다,” 조선일보 2013.9.14.) 유럽이 폼 나는 이유는 바로 정원이 있기 때문이라는 한마디는 참 간명하고 명쾌한 표현이었다. 정원과 함께 하는 일상이 있기에 유럽 사람들의 삶이 우아한 거다.
사실 그 책에는 나도 조금 걸쳐 있다. 유럽에서 공부한 네 명의 조경가들에게 각자 공부했던 나라의 정원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진행하였을 뿐인데 그 책의 대표집필자처럼 소개되곤 한다. 명목상 그렇게 된 것일 뿐 실제 그건 아닌 거다. 명목상이든 아니든 아무튼 대표집필자로서 보자면, 이것은 정원 책이긴 한데, 그보다는 ‘정원을 좀 거닐어보자는 걸 이야기한 책’이라고 하는 게 나을 듯하다. 정원을 찾아다니는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 보통 하는 것처럼 파리로 로마로 인기 여행코스를 따라가다가도, 로마 근교 여기저기에 자리한 옛 추기경들의 빌라정원들을 잠시 찾아가 보거나, 아니면 파리 튈르리 정원처럼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정원처럼 동선 가까이에 있는 정원들을 들러 피곤함을 달래거나 잠시 한가하게 거닐어 보자는 거였다. 그런데 잔뜩 벼르고 가는 여행에 정원을 거닐자는 이런 심심한 이야기가 잘 통할까?
“3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책, 풍경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곧 졸리기 시작했다. 줄줄이 나오는 정원, 이름은 또 어찌나 생소하고 어려운지.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정원을 그려가며 읽다보면 어느 듯 작가와 마주 앉아 유럽 여행이야기를 나누는 듯 읽혀진다. 유럽의 정원, 때론 위세를 부리느라 멋을 내었는데, 그런 위세조차 아름답게 다가온다. 정원에 관한 그런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오거서 독서노트 “유럽, 정원을 거닐다” 중 여러 곳에서 발췌 조합)  

“이번 여름에 배낭여행 갈 거니? 가면 어디 갈 건데?”
- 유럽.
“유럽 어디? 런던-파리-로마- ...?”
- 응, 정원! 좀 거닐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