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신혜연 기자 (shy17@skkuw.com)

“기울어진 축구장.”
지난달 개봉한 다큐멘터리 <슬기로운 해법>에서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은 한국의 언론조건을 이렇게 표현했다. 누가 봐도 한 쪽 편에 유리한 경기가 예상되는 이 경기장은 한국 언론지형과 판박이다. 거대 기업과 정권 실세 등 사회 기득권층이 광고와 권력으로 언론을 길들이는 동안 경기장은 강자를 위한 자본의 논리 쪽으로 기울대로 기울어 버린 탓이다. 골이 어디로 들어갈지는 불 보듯 뻔하다.
최근 청와대 보도 통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길환영 한국방송 사장 해임 제청안이 이사회를 통과했다. 지난달부터 한국방송 기자들이 제작 거부에 돌입하고, 노조가 파업을 벌인 끝에 이뤄진 조치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 언론 독립에 문제가 되는 것이 비단 길 사장뿐일까. 언론 스스로 권력과 한몸이 되어 정권과 결탁하고 대기업의 잘못을 덮어주는 관행 덕에 2014년 한국은 언론 자유 지수로 32점을 받았다. 세계 170여 개국 중 68위로, 처음으로 ‘언론 자유국’ 지위를 박탈당한 2011년 이후 계속되는 하락세다.  
불행히도 대학언론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기성언론을 비판하며 사회 부조리에 저항하던 대학언론의 모습은 옛말이다. 오늘날 대학언론은 예산이라는 목줄을 쥔 학교와의 싸움만으로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학교의 검열과 탄압에 못 이겨 거리로 뛰쳐나온 사례도 수두룩하다. 언론 장례식을 치르고, 파업을 하고, 호외 발행하는 일은 대학언론계에 이제는 낯익은 풍경이다. 그러고 나면 편집국장이 해임되거나 기자단이 징계를 받는 일도 적잖다. 학생기자들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20대의 평범한 대한민국 대학생일진데, 대학언론사에만 들어가면 돌연 저항적인 ‘문제아’가 되는 이유가 뭘까. 답은 기울어진 축구장에 있다.
대학(大學) 없는 대학은 기울어진 축구장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대학기업화 바람이 들이닥치면서 대학은 철저히 자본의 영역에 편입됐다. 스스로 기업임을 자처한 대학에서 대학언론은 순종적인 지지자 역할을 요구받았다. 연일 대학 순위 상승을 보도하고 취업률 저하를 우려해야 할 뿐, 학생자치를 고민하거나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부차적인 일로 여겨졌다. 정의를 외친답시고 효율성을 가로막는 언행은 검열됐다. 그 과정에서 생긴 대학언론 수난사는 필연에 가깝다.
그러나 진리를 향한 움직임은 대학언론의 포기할 수 없는 사명이다. 효율성과 경쟁논리로 점철된 기울어진 축구장 안에서 대학언론인들은 오늘도 골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경기장에서 가만히 있는 다는 것은 곧 골을 내주겠다는 뜻이다. 공이 흘러가도록 정해진 그 방향에 맞서 열심히 발을 굴러야만 제자리라도 ‘유지’할 수 있다. 태준식 감독은 <슬기로운 해법>에서 해법 대신 몇 가지 단서를 남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민주화 이후의 해직 언론인들은 “기자들이 바뀌고, 국민들이 신경 써야”지만 권력으로부터 언론의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결정적인 오보와 몰상식한 취재 관행으로 ‘기레기’ 소리를 듣던 기자들이 반성문을 쓰게 만든 건 국민들의 질타였다. 기울어진 축구장에서 ‘가만히 있는 기자’는 진리와 정의의 소명을 져버린 것과 같다. 5학기 동안의 기자 활동을 마무리하는 입장에서, 그동안 가만히 있었던 자신을 돌아본다. 그나마 어쭙잖게라도 ‘기자’ 흉내를 낼 수 있었던 건 독자들의 질타 덕분이 아닌가 싶다. 이 지면을 빌어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