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 여행가 강기태

기자명 김태윤 기자 (kimi3811@skkuw.com)

여러 가지 농작업기를 연결해 동력을 공급하며, 주행 또는 정지 상태에서 작업을 수행하는 농업기계. ‘트랙터’의 사전적 정의다. 바로 여기, 방방곡곡을 다니며 젊음의 동력을 공급하는 인간 트랙터 ‘강기태’가 있다.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꿈’을 선택한 뜨거운 하동 남자. 트랙터 한 대로 전국 일주를 하고, 터키와 중국 횡단을 넘어 브라질 여행을 앞두고 있는 그. 열정, 도전, 온정의 힘찬 바퀴를 굴리며 그가 전하는 시속 30km의 나눔에 대해 들어봤다.

▲ 정현웅 수습기자 webmaster@skkuw.com

‘트랙터 청년 강기태’의 대학생활은 어땠나.
대학 진학부터 내가 원하던 방향이 아니었다. 수능을 망쳐 선택지가 없었고,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부모님의 바람에 따라 2년간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는 한국교원대에 진학했다. 가자마자 든 생각은 ‘교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는 것. 성격상 창의성을 발산하며 여러 활동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이곳에선 미래가 정해져 있었다. 갑갑했다. 적어도 20대만큼은 많은 사람을 만나며 청춘을 불사를 수 있는 여행가로 살자고 마음먹었다.

트랙터를 여행 수단으로 삼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교 4학년 때까지 다양한 여행을 했다. 하동에서 삼척까지 자전거 여행, 제주도 일주, 그리고 동남아와 중앙아메리카 배낭여행까지. 오토바이, 자동차, 자전거 등의 교통수단을 다 이용해보니 ‘강기태만의 재미난 여행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뿌리부터 생각해 봤다. ‘아, 나는 쌀농사를 짓는 농부의 아들이지’.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경운기와 트랙터다. 주변에선 안정적인 교사라는 직장을 두고 막무가내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에 대해 반대가 많았다. “저 미친놈이 트랙터로 무슨 여행을 해.” 아무도 해본 적 없는, 상상할 수 없는 여행이니까. 그런데 나는 될 거라고 봤다. 법률상 문제도 없고, 최대 30km까지 속도도 나오고, 대체 뭐가 문제인가.

▲ ⓒ강기태 제공

그럼 트랙터를 구해야 할 터인데. 협찬 과정이 궁금하다.
대학교 4학년, 페루에서 산티아고의 4,000km를 트랙터로 가겠다는 여행계획서 13장을 가지고 국내 1위 트랙터 업체를 찾았다. 경비 아저씨가 무작정 홍보 부서를 불러달라는 말에 어이없어하더라. 어렵게 홍보팀장을 만났으나 역시나 퇴짜였다. 제대 후 ‘국내 여행에 성공한다면 해외여행도 가능할 것이다’는 마음으로 초심으로 돌아가 국내 여행부터 도전했다. 여행계획서를 다듬고, 패기와 열정을 담은 한 장의 편지글을 써서 전국에 있는 모든 트랙터 업체의 실무진과 농업 관련 교수님에게 보냈다. 100여명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중 2명이 관심을 보이더라. 농업대학 교수님이 열정에 감탄하며 협찬이 어려우면 농대 학생들이 쓰고 있는 트랙터를 빌려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격려해줬다. 트랙터 업체를 방문해 여행 계획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사회 경험도 없고, 기업에 가본 적도 없어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다 쏟아내고 오자고, 수십 번 반복해 연습했다. 결국 트랙터 한 대와 기름값을 지원받는 데 성공했다.

국내여행 얘기부터 듣고 싶다. 여러 인연을 만났다고 들었다.
국내는 완벽한 무전여행이었다. 육아원, 양로원에 가서 봉사하면서 숙식을 해결했다. 봉사활동을 하면 할수록 여행이라는 것이 막연하게 노는 것이 아닌, ‘자선활동’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시골로 갈수록 도시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도시에선 옆집에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모른다. 소통과 교류가 없는 것이다. 반면 시골엔 ‘사람’과 ‘온정’이 있다. 여행 중 만난 모든 인연이 소중하겠지만, 경북 청송군 진보면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진보FC’ 축구팀이 풋살장 구석에서 텐트 치고 자는 나를 거둬줬다. 도시 한복판이었다면 누가 처음 보는 청년에게 자리를 내어 줬겠는가. 진보면에서 쌀농사도 돕고 건물 짓는 것도 돕고, 지금도 계속 연락한다. 한번은 의사 친구들과 함께 외나로도에 위치한 염포마을에서 의료 봉사를 했다. 할머니들이 이렇게 사람 손을 그리워하는구나, 시골 인심 정말 좋구나를 느꼈다. 그때 먹은 해삼 비빔밥, 밥 한 알이 해삼 하나와 똑같던 그 해삼비빔밥. 그 맛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트랙터 여행만이 갖는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단 그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여행이기에 사람들에게 각인이 된다. 그리고 느리다. 느리니까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다 볼 수 있다. 사람들의 눈빛까지. ‘일손 좀 도와주실래요?’ ‘끝나고 술 한 잔 해요’ 하며 이야기도 나눈다.

▲ ⓒ강기태 제공

터키, 내몽고, 중국까지. 트랙터로 가는 세계는 어땠나.
자동차라면 절대 가지 못할 터키의 좁은 골목골목을 갔다. 확실히 ‘형제의 나라’다 보니 한국인을 알아보더라. 시골에서 터키 참전 용사들을 만났다. 할아버지 한 분을 따라갔더니 참전용사 친구의 묘비였다. 서울, 부산, 인천 더딘 발음으로 말하는데 가슴 한구석이 찡하고 고마웠다. 중국에선 농민들을 많이 만났다. 최대 농업지역인 랴오닝 성, 지린 성, 헤이룽장 성 등 동북 3성의 주요 도시와 농촌 지역을 트랙터를 타고 이동하며 농업 현장을 체험했다. 농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나라의 농산품과 농기계의 우수성을 알리기도 했다.

▲ ⓒ강기태 제공

‘나눔’과 관련된 여러 행사를 기획한다고 들었다.
공정무역에 대한 관심이 많다. 스타벅스 커피만 봐도 생산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 싶어 공정무역 트랙터 티셔츠를 만들어 수익금을 월드비전에 기부했다. 월드컵에 맞춰 떠나는 브라질 여행에서는 ‘사랑이 담긴 엽서’를 보내주는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힘을 주고 싶은 사람에 대한 사연을 적어 올리면 브라질 현지에서 직접 엽서를 쓰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 것이다. 수익금은 기부하고. 나는 브라질 여행을 알림과 동시에 편지로 제3자를 기분 좋게 할 수 있어 좋고, 받는 이는 예기치 않은 선물을 받아 좋은 것이다. 이런 선순환이 좋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가 내 신조다. 이왕 살려면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최근 여행대학을 설립했다고 들었다. 어떤 곳인가.
나는 여행을 통해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고,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 통해 얻은 가치들을 다시 돌려주고 싶었다. 많은 사람이 내게 여행을 가르쳐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당연히 못 가르쳐 준다. 여행은 체험이니까. 그런데 생각 외로 많은 친구들이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정작 왜 떠나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의 목적인데 말이다. 여행대학 수업은 왜 떠나야 하는지 각자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그 목적을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제약 회사를 관둔 한 청년 수강생은 록 페스티벌에 관심이 많아 3개월간 유럽 각국의 록 페스티벌을 도는 여행을 떠났고, 서울시 관광부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청년은 세계의 관광 도시를 돌아보는 테마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대체 왜 여행을 가는 것인가. 왜 떠나나.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익숙한 삶의 연속이다. 일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일들에선 내재된 잠재능력을 시험해 볼 수 없다. 무전여행과 배낭여행을 하면서 여권도 잃어버려보고 배낭도 도둑맞아 보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다. 우리의 미래도 똑같다. 내가 미래의 어떤 상황에 어떻게 부딪힐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여행 중에 만나는 위기 상황을 해결하다 보면 미래에 난관에 봉착했을 때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또 하루 24시간을 전부 쓸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직장인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까지를 쓴다면, 여행가로서의 삶은 여행하는 24시간 전부다.

꿈을 찾지 못하고, 혹은 꿈이 있어도 움직이길 두려워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타인의 평가에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꿈의 크기와 잠재력을 판단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다. 꿈이 생겼다면, 바로 실행했으면 좋겠다. 제일 겁 없이 뭔가를 할 수 있는 나이도 20대니까. 30대 접어드니까 체력이 달리는지 트랙터 여행도 힘들어 죽겠다.

강기태에게 ‘트랙터 여행’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본질을 물어보는 질문이기에 너무 어려운 것 같다. 강기태에게 트랙터 여행은 ‘느림의 미학’? 이런 답은 정말 손발이 오그라든다. 정의할 수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트랙터는 ‘강기태’다. 느리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꿈에 있어서는 우직하게 가고 싶은 곳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