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택수 기자 (ltsu11@ naver.com)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가지고 있는 제일 편한 옷을 골라 입는다. 그리고 신문사로 출근한다. 신문사에 들어서 내 자리를 찾아 앉는 그 순간 ‘아. 오늘도 이렇게 시작이네’ 라는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성대신문에 들어 온지 한 학기 만이다. 누가 그랬던가, 3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3월 4일, 멈춰 있는지 의심이 가던 국방부의 시계도 결국 한 바퀴를 돌았고, 나는 당당한 민간인이 됐고, 학교는 개강을 했다. 남자 동기들은 여전히 칙칙했고, 여자 동기들은 여자에서 담배와 피로에 찌든 고시생이 되었거나, 외국으로 떠나 돌아올 생각을 안했다. 봄의 화사한 기운은 만물을 생동케 하지만 복학생의 칙칙한 외모는 빛나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랬나보다. 성대신문에 눈길이 간 건. 집, 학교, 헬스장을 전전하고 있을 무렵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저기요…….’ 그곳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생각되는 한 남학생이 있었다. 성대신문의 기자랬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진우가 95년생이란 걸 난 아직도 믿을 수 없다.) 그러면서 나에게 팜플렛 하나를 주고 갔다. 성대신문에 들어오란다. 마음이 동했다.면접을 보고 논술을 쓰고 별 생각 없이 카페 앞에 서서 여기서 사먹을까 아니면 5분을 걸어 500원 더 싼데서 먹을까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성대신문 합격 문자가 왔다. ‘음, 음? 음?!’ 그리고 수습기자가 되었다. 처음 수습기자 신분으로 선배들과 만나러 가는 자리, 나는 당연히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을 줄 알았다. 1학년 마치고 바로 군대를 가서 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었는데 이제 군대를 갔다 오니 ‘오빠’소리 좀 듣겠구나 싶었다. 착각이었다. 그곳에는 어색한 복학생 네 명이 자리하게 되었다. 일주, 이주, 삼주……. 학교를 다니고 시험을 보는 와중에도 수습기자 트레이닝은 계속되었다. 트레이너와 동기들과 같이 편집권, 사설권, 저널리즘등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선배들을 찾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는 6주가 지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왠지 모르게 기말고사가 이틀 남았던 상황이었음에도 트레이닝이 끝났다는 것 하나만으로 마음이 참 고요했다. 그리고 역시 노력은 결과를 배신하지 않았다. 마음이 고요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은 결과 전공과목에서 c+이 나왔고 미련 없이 재수강을 선택했다. 신문사와 알바와 공부와 운동을 같이 한 결과였을까. 14년 1학기를 마치고 역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잡으려 할 수는 없다는 걸 느꼈다. 수습이 끝나고 mt를 가고 준정기자의 신분으로 신문사에 출근하는 지금 나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가지고 있는 제일 편한 옷을 골라 입는다. 그리고 신문사로 출근한다. 신문사에 들어서 내 자리를 찾아 앉는 그 순간 ‘아. 오늘도 이렇게 시작이네’ 라는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성대신문에 들어 온지 한 학기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