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살림하는 예술, 한옥에 살어리랏다
현실을 살림하는 예술, 한옥에 살어리랏다
  • 김태윤 기자
  • 승인 2014.09.24 11:23
  • 호수 15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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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간 ‘시청각’

도시락 카페와 기름 떡볶이로 유명한 통인시장이 위치한 자하문로. 좁다란 골목 안을 비집고 들어서자 진녹색 페인트에 낡은 철제 대문의 한옥 한 채가 보인다. 이 낡은 한옥 안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작년 11월 통인동의 한옥에 문을 연 전시 공간 ‘시청각’을 찾았다.


처마 아래 매달려 있는 백열전구와 빛바랜 계량기, 문을 괴고 있는 적색 벽돌에 의아해 하고 있을 무렵, 전시장 내부에서 편한 복장의 현시원 큐레이터가 기자를 맞았다. ‘시청각’은 현 큐레이터와 막역한 친구인 안인용 에디터가 함께 기존 형식을 벗어난 문화적 움직임을 만들어 가는 공간이다. 시청각은 디귿자 형태의 옛 한옥, 주거 공간으로서의 물리적 모습을 그대로 유지 하고 있다. 작은 마당과 세 개의 방, 부엌, 세탁실, 옥상으로 구성된 공간은 한때는 가내수공업의 현장이기도 했고, 두 아이를 키우는 부부가 사는 가정집이기도 했다.
이는 시청각이 지향하는 예술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바로 ‘현실’과 분리되지 않은 예술 공간. 전시장 옆방의 싱크대에서 찻잔을 내리던 현 큐레이터가 말을 이었다. “현실과 분리된 ‘감상’만을 위한 미술이 아니라, ‘현실적 조건’에 반응하는 예술을 만들어가고자 해요. 예를 들면, 요즘 젊은 작가들이 금전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작업해야 하나 등을 고민해요.” 현재 열리고 있는 이수성 작가의 개인전은 ‘본업인 미술과 부업인 아르바이트’, ‘작품을 만드는 것과 허무는 것’등 미술을 둘러싼 현실의 관계망을 이야기한다. 과거 작업에 사용된 재료는 새로운 작업 조건이 됐다. 다른 전시장에서 노란색 계단으로 전시됐던 녹색 피라미드는 방수 페인트가 칠해져 ‘워터프루프 파라다이스’라는 작품으로 다시 부활했다.
나아가 이곳에선 미술 작가뿐 아니라 디자이너, 음악가, 건축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전시 활동과 토크 활동을 펼친다. “비엔날레나 아트 페어와 같은 큰 제도의 경우 예술가를 ‘작가’라는 이미지 안에 가두는 경향이 있어요. 시청각은 작품이라는 결과 외에도 그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 그 ‘뒷얘기’에 집중하고자 해요.” 지난달에는 이러한 취지에서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의 정윤석 감독과 한겨레 고나무 기자가 만나 대담을 펼치기도 했다.

대안의 ‘대안’이 되는 곳
시청각은 ‘대안공간의 제도화’에 대한 ‘대안’적 시도다. 미술계의 수구화와 상업화를 비판하며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혁신의 장이었던 대안공간은 어느새 그 활력을 잃었다. “대안공간의 제도화는 대안공간만의 문제라고는 볼 수 없어요. 10년 전만 해도 신진 작가 레지던시나 워크숍 같은 프로그램이 새로운 콘텐츠였으나, 이제 국공립미술관 같은 거대 제도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모두 흡수했다고 볼 수 있죠.” 신진 작가의 발굴 역시 매너리즘에 빠졌다. 대안공간들의 취향이 작가 선정의 기준이 돼 또 다른 인맥 주의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시청각은 저물어간 대안공간에 대한 ‘대안’으로, 2014년 현재의 문화적 특수성에 반응하길 지향한다. 90년대 말의 대안공간이 미술에만 집중했다면, 이곳은 예술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현실적 조건을 복합적으로 고찰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 ‘누가 배를 그렸다’고 하면 그 배는 이전과는 다르게 해석돼요. 현실이 예술에도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죠.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당대에 어떻게 읽힐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싶어요.”
갤러리를 탈출한 이야기, 시공간의 제약 넘다
더불어 시청각은 기획자 위주의 전시에서 벗어나 작가와 기획자 간의 동료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공모 제도나 신진 작가 선정의 주체가 되는 것은 거부한다. “표백된 공간인 상업 화랑의 경우 작품뿐 아니라 공간 자체도 손상되면 안 돼 운반에도 주의가 따라요.” 하지만 이곳에선 전시 공간 한 가운데에 물을 받아 놓기도 하고, 24시간 작업 활동을 할 수 있게 열쇠까지 빌려준다. 새벽에 작품의 진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라면, 새벽 시간에도 전시장을 개방한다. 국공립 미술관의 공무원식 행정 절차나 상업 화랑의 상품성에서도 탈피했다. “종종 제도라는 것이 정작 중요한 콘텐츠를 방해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정형화되지 않은 젊은 작업들을 전시하고자 해요.” 시청각은 공간 안팎의 이야기와 대화를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청각 문서’를 출간한다. “거대한 하드웨어보다 내부적으로 공유 하는 목소리가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눈으로 보는 감각과 귀로 듣는 감각을 아울러 이르는 말, ‘시청각’.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들려오는 동시대의 담론을 담아내는 시청각의 새로운 시도. 마당에 박힌 타일 조각, 씻다 만 그릇, 가지런히 잘라 놓은 과일 등 세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에서 피어날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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