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기자명 강신강 기자 (skproject@naver.com)

지난 7월 울리히 벡 교수를 한국으로 초청한,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한 교수는 벡 교수와 많은 연구를 함께해왔다. 그에게 한국 사회에 위험사회 이론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들어봤다. 인터뷰는 보슬비가 내리는 야외에서 진행됐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 김은솔 기자 eunsol_kim@skkuw.com

세월호, 군 인권 문제, 싱크홀 등 여러 위험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위험사회’의 맥락에서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위험의 유형과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세 가지 경우만 이야기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곳곳에 위험요소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 위험사회의 여러 가지 측면이 동시에 터지기 쉬운 사회가 한국 사회다. 한국은 특별히 위험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특별히 위험한 이유는 무엇인가?
단기간에 성장만을 하려고 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서구가 오랜 시간에 걸쳐 성취한 것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룬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부작용을 예견하거나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지 못했다. 중국도 우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중국은 강한 권위주의 사회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민주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시민들의 감수성이 중국보다 높다. 위험도 심각하지만 시민들의 감수성이 예민해서 위험을 강하게 느끼기 때문에 한국은 특별히 위험한 사회다.

한국 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시민들이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대형 사고 위험’이다. 사고 공화국이란 말이 퍼지듯이 한국에는 대형 사고의 위험성이 많다. 특히 이런 사고가 자연재해가 아닌 외형적 성과 위주로 발전하고 안전문제를 등한시해서 발생한 것이다. 또한, 대형 사고가 터지면 구조적 결함이 드러나면서 여러 사고가 동시에 터지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위험의 극복을 위해 벡 교수는 ‘성찰적 대응’을 강조했다.
‘어떤 것을 위험이라 규정하느냐’를 결정하는 주체는 보통 정부나 전문가다. 하지만 실제로 위험의 영향을 받는 것은 시민이다. ‘성찰’은 정부와 전문가만 믿던 상황에서 시민이 직접 위험을 규정하고 대책을 논할 수 있는 상태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다른 의미에서 ‘성찰’은 어떤 문제가 위험으로 등장했을 때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위험은 현대인이 피할 수 없는 삶의 부분일 수도 있다. 최선을 다해 관리했음에도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올 경우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성찰적 태도이며 대응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젊은 세대의 경우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꼭 젊은 세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모두가 성공의 포로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타인에 대한 배려도 줄어들고 위험에 대한 준비도 부족해졌다. 안전 문화가 전반적으로 미성숙하다.   젊은 세대의 의지가 특별히 부족하다면 그 이유는 여느 세대보다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기 때문일 것이다. 경쟁은 사회를 발전시키며 개인의 창의성을 키우는 좋은 기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경쟁이 배타적으로 흐르면 사회는 대단히 불안해진다. 젊은 세대가 겪는 어려움은 개개인의 독특한 체험이 아니다. 그들의 어려움은 사회적으로 공인될 수 있으며 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다. 이를 위해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해야 한다.

젊은 세대 스스로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확장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실패와 좌절이 반복되면서 지친 것 같다.
젊은 세대가 많이 실망했을 것이다. 어떤 요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다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에너지가 유실되는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벌써 포기할 이유는 없다. 그 자체가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될 수 있다. 사회의 호응이 있어야 하는 정당은 젊은 세대의 요구사항이 분명히 드러나면 이에 대해 깊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과감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실제로 어떤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가에 대한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

세월호를 겪은 한국 사회가 ‘해방적 파국’을 맞이할 수 있다고 보는가?
어려운 국면으로 가고 있다. 계속해서 희망이 꺾이고 그것이 자꾸만 낙담으로 변한다. 세월호 사건은 이념 공방과 정쟁 속에 들어섰다.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의 실패가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또 다른 위험이 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은 새로운 변수가 등장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 그때마다 해방적 파국을 위한 기회는 온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굉장히 어려운 국면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위험사회’를 사는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과거에는 젊은 세대가 사회를 바꾸기 위해 큰 그림을 그렸다.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진보를 위한 거대한 담론이 거의 상실된 시대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욕심을 버리고 시민 개개인의 삶이 안전을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주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젊은 세대는 미래의 꿈이다. 기백을 갖고 도전해야 한다. 젊은 세대가 무기력에 빠지면 사회도 무기력해진다. 문제를 먼 곳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아야 한다. 자신의 체험을 날카롭게 보고 그것을 공적 쟁점으로 부각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회학적 상상력이고 젊은 세대의 지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