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수민 편집장 (skkusue@skkuw.com)

2학기 개강을 맞아 평소보다 더욱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을 개강호. 하지만 몇몇 학보들은 정상적으로 발행되지 못한 채 씁쓸한 개강을 맞이했다.
국민대학교 학보사 <국민대신문>의 경우 제910호 보도면을 배치하는 데 있어 주간교수와의 마찰이 있었다. 특정 학내 사안에 대해 “너무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기사를 재배치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대신문> 기자단은 주간교수와의 협의를 통해 기사를 재배치했고, 원래 발행일보다 이틀 늦게 배포될 수 있었다. 일단은 신문이 발행되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기자단 내부에서 편집권에 대한 이야기가 완전히 마무리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한성대학교 학보사 <한성대신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492호의 1면 탑 기사로 나가기로 예정돼있던 사안에 대해 주간교수가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1면의 탑 기사 부분이 삭제된 채로 발행됐다. 삼육대학교 학보사 <삼육대신문>도 개강호 신문 배포에 문제가 생겼다. 학생처와의 마찰로 인해 배포에 문제가 생겼고, 삼육대신문은 지난 5일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학생처와의 협의를 통해 앞으로는 발행 전 신문 시안을 학생처에서 검토하는 일은 일체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협의한 끝에 결국 원래 발간 예정일을 훌쩍 지난 시점에야 배포될 수 있었다.
이번 개강호 관련한 일과 비슷한 경우가 생길 때마다, 그리고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평소에도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학교 신문은 학교의 얼굴인데 말이야”라는 얘기다. 학교 신문은 언론사이기도 하지만 학교의 대표 신문이기 때문에, 우리 학교를 대표해서 보여줄 수 있는 소식들을 위주로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학보사 기자로서 일하며 학보가 학교의 ‘얼굴’이 되는 것은 너무나 뿌듯하고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얼굴이 당장의 겉치레만을 위한 내용으로 채워진다면, 그것은 결코 학교의 얼굴이 될 자격이 없다.
학생과 기자 사이에는 생각보다도 거대한 벽이 존재한다. 기자는 독립적인 시각에서 사건을 중립적으로 바라보고 보도해야 하는데, 학생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르침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떠한 사안에 대한 취재와 신문 제작을 하는 데 있어서도 가르침이 필요한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정한 의견에 대항하고 올바른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학생의 본분이다. 우리는 기자로서, 그리고 학생으로서의 우리의 본분에 충실 하고 싶다.
모두가 ‘글로벌’을 외치는 요즘 시대. 대학마다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 경쟁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서, 모든 대학은 조금이라도 규모를 늘리고, 발전하고자 애쓰고 있다. 하지만 매 분기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대학평가 순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건전한 비판을 수용하고 그것을 보완해 발전시켜 나가려는 자세다. 그런 과정에 있어서 학보사와 학생 기자를 단순히 학교의 홍보지,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대상’ 정도로 여기는 시각은 성숙하지 못한 시각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보사들끼리 모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각 학보사별로 편집권이 얼마나 보장돼 있는지를 서로 묻는 것은 이제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됐다. 하지만 학교 신문이라고 해서, 편집권의 보장 정도에 대해 서로 고민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신문사의 편집권은 온전히 신문사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신문의 존재 이유다. ‘대학교’라는 틀 아래 있다고 해서 신문의 입을 막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대학생의 입을 막으면, 사회의 입을 막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