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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취 대신 위로를, ‘마님은 왜 돌쇠에게만 술을 주시나’반촌사람들 - '마돌' 큰이모 심원자씨
정정락 기자  |  woo7875@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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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8호] 승인 2014.09.29  07: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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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잔 어때?” “좋지! 이모한테 가서 오목 먹자!” 이모? 오목? 궁금증에 친구의 뒤를 따라가 본다. ‘마님은 왜 돌쇠에게만 술을 주시나’, 멈춰 선 술집의 간판이 예사롭지 않다. “이모! 여기 술 한 병 더 가져갈게요!” “아이고, 내일 1교시라며! 작작 좀 마셔, 인마!” 남학우 하나가 사장님을 스스럼없이 이모라 부른다. 그리고 이모는 술을 더 마시겠다는 손님을 격려하기는커녕 퉁명스럽게 다음날 그의 수업을 걱정해준다. 이 가게의 정체는 뭘까. 지난 25일, 세 자매가 운영하는 ‘마님은 왜 돌쇠에게만 술을 주시나’(이하 마돌)를 찾아 세 자매 중 맏이인 심원자(58세)씨를 만났다.


   
▲ '마님은 왜 돌쇠에게만 술을 주시나'의 큰이모 심원자씨 /김은솔 기자 eunsol_kim@

단골들에게 ‘큰이모’라 불리는 심원자씨에게 대뜸 ‘오목’이 뭔지 물었다. 오목은 ‘오징어와 목살’을 볶은 요리로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다. 간판을 가리키며 작명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말하자 그녀는 뿌듯한 얼굴로 큰딸과 자신의 합작품이라 답했다. “딸이 후보로 가져온 가게 이름 중 이게 첫눈에 들어왔어.”
단골손님 이야기를 하자 그녀의 얼굴에 바로 훈훈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 내 새끼들이지!” 그녀는 가게에 찾아오는 학생들이 시험에 붙을 때마다 손수 사비를 털어 학교에 현수막을 걸어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녀에 대한 단골들의 애정도 이 못지않다. 학창시절 ‘마돌’에서 술을 먹었던 단골들은 졸업해서도 근처를 지나가다가 들러 인사를 한다. 시험에 합격하거나 취업을 하면 선물을 사들고 가게를 찾는다. 새벽에 멀리서 술을 마시다가 이모가 보고 싶다며 택시를 타고 오는 경우도 다반사. 이뿐만이 아니다. 결혼할 때도 당연히 그녀를 찾고, 30대 중반의 직장인이 돼서 상사와 함께 오는 이들도 있다.
그녀가 단골들과 이처럼 깊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 계기는 자취생들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이었다. “먼 곳에서 올라와서 챙겨주는 부모도 없이 매일 밥 대신 술을 먹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 그래서 가게를 찾는 학생들의 이름과 고향을 외우고 식사를 챙겨줬다. 이에 그치지 않고 푸짐한 서비스에 과일까지 주기 시작했다. 과일을 먹기 힘든 자취생들에게 제철 과일을 챙겨주다 보니 한 달에 과일값만 백만 원이 넘을 때도 있었다. 또한 그녀는 작년까지만 해도 명절에도 꼬박꼬박 가게 문을 열었다.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지방 학생들이 밥 먹을 곳이 없을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의 정성 때문인지 그녀는 ‘서울 엄마’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그녀가 마냥 친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을 ‘잔소리꾼’이라 칭했다. 가게를 찾는 학생들이 나태한 모습을 보이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으면 대놓고 지적하는 일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이놈 저놈은 기본이고 심한 욕조차 스스럼없이 하지.” 그녀의 잔소리는 특히 여학우들에게 집중된다. 딸이 둘 있다 보니 여자가 술을 많이 마시거나 늦게까지 노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유독 매서운 잔소리 때문인지 가게에는 남자 손님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녀는 그렇지 않아도 가게 별명이 ‘논산 훈련소’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렇게 퍼주고도 남는 게 있을까. 장사 초기에는 손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준다며 두 동생이 불만을 표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손님에게 100을 받으면 그 중 30은 돌려줘야 한다”며 단호히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사실 그녀는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을 돌려주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지금은 동생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인 데다가 오히려 “두 이모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퍼준다”며 짐짓 인상을 써 보였다. 손님들도 그 마음을 아는지 장사를 시작한 지 9년이나 됐지만 술자리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고 한 번 없었다.
그녀는 손님들을 모두 ‘우리 애들’이라 불렀다. 그런 그녀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손님은 누굴까. 한참을 생각하던 그녀는 이내 “비밀”이라며 단호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우리 애들’은 서로 사랑받으려 난리기 때문에 누구를 뽑으면 나머지가 토라진다”며 “대답은 내 맘 속에 있다고 기사에 실어 달라”고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렸다.
“어른들이 말하잖아? 요즘 아이들은 싸가지가 없다고. 그런데 그건 틀린 생각이야. 어른들이 잘못한 거야. 사랑으로 품으면 아이들은 다가오기 마련이거든.” 그녀는 몸이 허락하는 한 언제까지고 사랑을 퍼주며 학우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속이 아니라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술집을 찾는가. 그렇다면 이모의 품에서 술 한잔 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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